포항초·남해초로 불리는 겨울 시금치. 가장 추운 곳에서 자라는 잎이 가장 단 까닭과, 어머니의 시금치무침이 닿던 겨울 끝의 식탁.
가장 추운 곳에서 자라는 잎이, 가장 답니다.
겨울이 끝나가는 어느 새벽, 시장 한쪽에 시금치 한 단이 놓여 있는 것을 봅니다.
짧고 단단한 잎. 붉은 기운이 남은 뿌리. 굵게 갈라진 줄기.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시금치와는 조금 다른 얼굴입니다.
포항초, 혹은 남해초라고 불리는 겨울 시금치.
찬 바람이 가장 깊은 계절에만 나오고, 봄이 오기 시작하면 금세 자취를 감춥니다.
시금치는 유독 겨울 끝에서 가장 자기다운 맛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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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어머니의 시금치무침을 떠올립니다. 데친 시금치를 꼭 짜낸 뒤, 참기름과 다진 마늘을 넣고 손으로 조용히 무쳐 내시던 저녁.
한입 먹으면 짭조름한 간보다 먼저 단맛이 닿았습니다.
어린 나는 그 맛이 늘 이상했습니다. 시금치는 원래 단 채소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어머니의 시금치는 언제나 조금 달았습니다.
한참 뒤에야 그 단맛의 이유를 알게 됩니다.
겨울 시금치는 추위 속에서 잎이 얼지 않으려고 제 안에 당분을 모은다고 합니다. 날이 차가워질수록 잎은 짧고 단단해지고, 단맛은 더 깊어집니다.
봄 시금치는 부드럽고 길지만, 겨울 시금치가 가진 그 단맛은 조금 옅어집니다.
같은 잎인데도 계절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갖는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포항의 바닷바람이 잎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남해의 짠 흙이 단맛을 깊게 만든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하나입니다.
한 잎의 맛은 그 잎이 지나온 계절을 닮는다는 것.
겨울 시금치는 추위를 오래 견딘 만큼만 단맛을 품습니다. 그리고 봄이 가까워지면 조용히 자리를 비켜 줍니다.
죽도시장에서 만난 한 어른은 시금치 한 단을 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보름만 지나도 다른 잎이 돼.”
추위가 풀리면 줄기는 길어지고, 단맛은 금세 묽어진다고 했습니다. 보름의 차이가 한 잎의 일생을 바꾸는 셈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제철이라는 말의 무게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좋은 계절은 생각보다 짧고, 맛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것.
봄동이 시장에 자리 잡기 전, 달래가 흙을 밀고 올라오기 전. 시금치는 겨울 끝에서 가장 먼저 식탁에 푸른빛을 올립니다.
두 계절 사이에 잠깐 머무는 잎. 겨울이 마지막으로 남겨 두고 가는 단맛.
오늘도 시장에서 시금치 한 단을 들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오래전 저녁 부엌이 떠올랐습니다.
참기름 냄새와, 데친 시금치의 약간 흙내 섞인 달큰한 향, 어머니 손끝에서 조용히 무쳐지던 겨울의 한 접시.
우리는 어쩌면 한 잎의 맛보다, 그 잎을 무쳐 내던 시간을 더 오래 기억하는지도 모릅니다.
2026.02.01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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