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가장 가까운 잎 — 냉이

냉이는 흙을 등지고 자라지 않는다.

3월 중순쯤 시장 한쪽 좌판에 냉이 한 무더기가 놓이기 시작한다. 흙이 묻은 뿌리가 서로 얽혀 있고, 잎은 작고 들쭉날쭉하다. 멀리서 보면 그저 흙 한 무더기처럼 보이는데, 손으로 쥐어 보면 그 안에 푸름과 향이 차곡차곡 닫혀 있다. 냉이는 흙을 등지고 자라지 않는다. 흙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봄을 모은다.

어릴 적 어머니의 냉이된장국을 떠올린다. 손으로 다듬은 냉이를 한 줌 넣고, 된장을 풀어 한소끔 끓이면 부엌에 흙냄새 같은 향이 퍼졌다. 그 향은 다른 봄나물의 향과 분명히 달랐다. 쑥이 깊고 진하다면, 냉이는 짧고 정직하다. 흙에서 막 올라온 자리의 향. 그 향이 입에 닿는 첫 한 숟가락이 봄의 시작이었다.

냉이는 손이 많이 가는 채소다. 뿌리에 묻은 흙을 한 톨 한 톨 털어 내고, 시든 잎을 골라낸 뒤, 흐르는 물에 여러 번 씻어야 한다. 어머니의 손은 그 작업을 한 시간 가까이 하셨다. 한 광주리의 냉이가 부엌의 양푼 안에서 점점 푸름을 되찾아 가던 모습을, 나는 부엌 옆에 가만히 앉아 보고 있곤 했다. 시간이 길었지만 어머니는 한 번도 서두르지 않으셨다. 냉이는 서두르면 흙이 남는다.

냉이무침은 어머니의 또 한 손이었다. 데친 냉이를 짜내고, 고추장과 마늘을 한 숟가락씩 섞어 손으로 가만히 무쳐 주셨다. 한 입을 넣으면 매콤한 양념 뒤에 냉이의 향이 천천히 올라왔다. 매운맛은 잠시였고, 향은 길었다. 어머니의 손은 그 두 자리의 균형을 정확히 아셨다.

냉이는 봄나물의 가장 처음 자리에 있다. 봄동이 들어와 있고 쑥이 자리를 잡았을 때, 냉이는 한 발 더 앞에서 흙을 쥐고 올라온다. 봄나물 3형제 — 달래·냉이·봄동 — 중에서도 가장 흙을 가까이 두는 잎. 우리가 봄을 시작할 수 있게 해 주는 잎. 오늘 한 무더기를 사 들고 돌아오는 길에 그 흙냄새가 손가락 끝에 한참 남아 있었다.

— 쿡톡의 편지, 흙 한 줌이 부엌에 닿은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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