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냉이된장국에서 시작해 노모의 저녁 부엌까지 — 봄의 맛을 정확히 만들던 손이 조금씩 느려져 가는 시간.
어릴 적 어머니의 냉이된장국을 떠올립니다.
손으로 다듬은 냉이를 한 줌 넣고 된장을 풀어 한소끔 끓이면, 부엌 안에 젖은 흙 같은 향이 천천히 퍼졌습니다.
그 향은 다른 봄나물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쑥이 깊고 짙다면, 냉이는 짧고 맑았습니다.
흙에서 막 올라온 자리의 냄새. 첫 숟가락이 입안에 닿는 순간, 아, 봄이 왔구나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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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는 손이 많이 가는 나물입니다. 뿌리에 묻은 흙을 하나씩 털어 내고, 시든 잎을 골라내고, 찬물에 여러 번 씻어야 비로소 한 끼가 됩니다.
어머니는 늘 양푼 하나를 앞에 두고 오래 냉이를 다듬으셨습니다.
흙빛이 돌던 냉이가 물속에서 조금씩 푸른 빛을 되찾아 가는 모습을, 나는 부엌 옆에 앉아 가만히 바라보곤 했습니다.
시간은 길었지만 어머니는 한 번도 서두르지 않으셨습니다. 냉이는 급하게 다듬으면 끝내 흙냄새가 남는다고 하셨습니다.
냉이무침도 자주 올라왔습니다. 데친 냉이를 꼭 짜내고, 고추장과 다진 마늘을 넣어 손으로 조용히 무쳐 내시던 봄 저녁.
한입 먹으면 매운맛은 잠깐 지나가고, 뒤늦게 냉이 향이 길게 따라왔습니다.
어머니는 그 짧은 매운맛과 오래 남는 향의 균형을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손맛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 그런 순간에 생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냉이는 늘 봄의 가장 앞자리에 있었습니다. 봄동보다 조금 먼저, 쑥보다 더 낮게, 아직 찬 기운이 남은 흙 가까이에서 올라왔습니다.
달래와 봄동과 냉이 가운데서도 가장 흙을 오래 품고 있는 잎.
냉이는 우리가 계절을 시작하게 만드는 나물처럼 느껴집니다.
지금 노모는 여든을 훌쩍 지나 아흔에 가깝습니다.
봄이 오면 여전히 집 근처 텃밭 둑에서 냉이를 뜯어 옵니다. 바구니 안에 흙이 조금 남은 냉이 한 무더기. 그것을 들고 들어오시는 모습을 보면, 문득 오래전 부엌이 다시 떠오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그 맛이 잘 나지 않습니다. 된장국은 조금 짜지기도 하고, 냉이무침의 간도 가끔은 엇나갑니다.
손끝의 힘도 예전 같지 않고, 냉이를 다듬는 시간도 오래 걸리십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 한쪽이 조용히 저려 옵니다. 한때는 봄의 맛을 정확히 만들던 손이 조금씩 느려지고 있다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냉이국이 끓는 저녁이면 부엌에는 아직 오래된 봄 냄새가 남아 있습니다. 젖은 흙 같은 향과, 된장 풀리는 냄새와, 천천히 국을 저으시는 노모의 옆모습.
맛은 조금 달라졌을지 몰라도, 그 부엌의 시간만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완벽한 맛이 아니라, 그 맛을 만들던 사람의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옅은 봄이 짙어 갑니다.
2026.03.15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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