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뚫고 올라온 첫 향 — 쑥

흙을 뚫고 올라온 첫 향, 쑥.

3월의 첫 비가 지나가면 어머니는 자주 마당 한쪽 흙을 들여다보셨다. 거기에 쑥이 올라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다음 날엔 두 마디. 한 일주일이 지나면 광주리 하나가 차올랐다. 어머니는 그것을 캐서 부엌으로 가져오셨고, 그날 저녁이면 부엌에서 쑥 향이 흘러나왔다. 봄이 시작됐다는 신호였다.

쑥국 한 그릇은 늘 짧게 끓인다. 된장을 푼 물에 다듬은 쑥을 한 줌 넣고 한소끔만 끓이면 된다. 오래 끓이면 향이 사라진다. 어머니는 늘 그 시점을 정확히 아셨다. 끓는 물에 쑥을 넣고 잠시 손을 놓고 계시다가, 어느 순간 불을 끄셨다. 부엌에 향이 가장 진하게 차오르는 그 시점. 그 짧은 자리를 어머니의 손은 한 해도 놓치지 않으셨다.

쑥은 쓴맛이 살짝 있다. 어린 나는 그 쓴맛 때문에 쑥국을 잘 먹지 못했다. 어머니는 그런 나에게 한 숟가락만 먼저 떠 주시고, 그 숟가락이 비워지면 더 이상 권하지 않으셨다. 그 한 숟가락을 다 먹지 못했던 봄도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야 그 쓴맛이 향의 다른 자리라는 걸 알았다. 향이 진할수록 쓴맛도 진하다. 한 잎이 한 향을 갖기 위해 한 쓴맛도 함께 가진다는 것.

쑥은 약초이기도 하다. 옛 사람들은 쑥을 봄의 약이라 했다. 한 해 동안 추위에 닫혀 있던 몸을 가장 먼저 풀어 주는 잎. 약이라는 말이 과장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봄의 첫 쑥국 한 그릇을 먹은 다음 날 아침의 몸은 분명 다른 데가 있다. 추위가 한 자리 빠져나간 것 같은 가벼움.

쑥떡을 만드시던 외할머니의 손도 함께 떠오른다. 쪄낸 쑥을 절구에 찧고, 쌀가루와 섞어 손으로 동그랗게 빚으시던 동작. 한 입을 베어 물면 떡 안에 봄이 닫혀 있었다. 외할머니는 떡을 빚으며 늘 한두 마디 말씀을 흘리셨고, 그 말씀들이 이제 어디로 사라졌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쑥향이 부엌에 닿을 때마다 그 자리의 외할머니가 잠시 다시 살아 돌아온다.

쑥은 흙을 뚫고 올라오는 풀 중 가장 먼저인 것 같다. 봄동이 들어와 있는 시장에 쑥은 이미 광주리에 담겨 있다. 달래보다 먼저, 두릅보다 먼저. 봄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가장 정확히 알려 주는 잎이다. 그 향이 부엌에 닿는 봄을, 나는 매년 어머니의 손을 떠올리며 기다린다.

— 쿡톡의 편지, 첫 쑥향이 부엌에 닿은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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