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라기보다, 오래 잊고 있던 어떤 마음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저녁이 낮게 내려앉는 마을 어귀.다랑논 끝에 바람이 오래 머물고,해가 기울면 집집마다 된장국 끓는 냄새가 낮게 번지는 곳.
저녁이 낮게 내려앉는 마을 어귀.
다랑논 끝에 바람이 오래 머물고,
해가 기울면 집집마다 된장국 끓는 냄새가 낮게 번지는 곳.
귀촌한 친구를 만나러 가던 길, 점심을 거른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배가 고파집니다.
추풍령을 넘어 백화산 자락이 멀리 보이던 그 길에서, 자꾸 어릴 적 우리 집 부엌이 떠올랐습니다.
허기라기보다, 오래 잊고 있던 어떤 마음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사람은 음식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음식에 담긴 시간을 먹으며 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감자를 씻을 때 말을 많이 하지 않으셨습니다.
손이 먼저 알고 있었고, 그 손등 위로 저녁 햇빛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흙바른 부엌과 들창 너머로 들리던 닭 우는 소리, 그 사이로 된장이 풀어지던 냄새.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 장면을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찌뿌둥하게 흐린 날, 된장국 냄새를 맡으면 나는 아직도 부엌 가득 번지던 매캐한 연기와 흙바른 부뚜막과 가마솥이 떠오릅니다.
· · ·
냄새는 이상합니다.
한 사람의 시간을 통째로 데려오니까요.
쿡톡이 정말 보내고 싶은 건,
농산물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람의 계절입니다.
흙이 마르기 전에 캔 감자와
새벽 이슬이 남아 있는 상추와
겨울 바람을 몇 번 견딘 배추 같은 것들.
그 안에는 맛보다 먼저 지나온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자꾸만 잊고 살아갑니다.
식재료는 화면 속 가격표가 되고, 저녁은 빨리 해결해야 할 일이 됩니다.
그런데 가끔은 그런 날이 있습니다. 된장 한 숟갈 속에 들어 있는 볕의 시간을 생각하게 되는 날. 쌀 한 톨이 밥이 되기까지 지나왔을 들판을 떠올리게 되는 날.
쿡톡은 그런 마음으로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 · ·
봄나물은 오래 기다리지 않습니다. 제때 먹지 않으면 향이 금세 지나갑니다. 사람 마음이 그렇듯이 계절도 머물러 주지 않습니다.
가을무는 찬 바람이 불어야 단맛이 들고, 배추는 서리를 몇 번 지나야 속이 단단해집니다. 땅은 늘 자기 시간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농부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왠지 계절을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수가 적고,
천천히 웃고,
묵묵히 제때를 기다리는 사람들.
어떤 음식은 사람을 울게 합니다. 맛있어서가 아니라, 잊고 있던 저녁을 데려오기 때문입니다.
늦게 귀가한 날 끓여 먹던 라면,
김 빠진 보리차 냄새,
어머니가 무를 썰던 칼 소리 같은 것들.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풍경을 잃어버리지만 입안에 남은 기억만은 오래 사라지지 않습니다.
· · ·
그래서 쿡톡은 물건보다 이야기를 먼저 건네고 싶습니다.
누가 이 마늘을 심었는지.
어떤 비를 맞으며 자랐는지.
어느 새벽에 수확했는지.
그런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 놓고 싶습니다.
마치 오래 여행하다 돌아온 사람이 가방에서 조용히 엽서를 꺼내 보이듯이.
오늘 저녁은 무엇을 드시나요.
한 끼를 때워야 하는 저녁에 잠시 멈추고 떠올려 보세요.
그 음식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누가 그 계절을 키워냈을까요.
우리는 누군가의 계절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2026.04.16 — cooktalk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