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맞이

청명의 淸은 왜 푸른 물이 아닐까 — 가라앉아 맑아진 물, 쑥떡과 청명주

단이가 쑥떡을 빚고 있다, 상 위에 쑥 한 줌과 청명주 병 — 청명, 하늘이 맑아지는 절기

해마다 4월 4일이나 5일에 드는 절기. 비 갠 아침, 트럭 보닛에 앉았던 가루 자국이 씻겨 있다. 淸은 푸른 물이 아니라 가라앉아 맑아진 물, 明은 창으로 드는 달빛. 길가 쑥이 가장 향 깊은 때, 충주 청명주와 새 불을 나누던 한식 이야기.

밤새 비가 지나가고 아침 하늘이 씻겨 있다. 트럭 보닛에 뿌옇게 앉아 있던 가루 자국이 사라졌다. 마을길 가장자리에 쑥이 손가락 두 마디쯤 올라와 있고, 성묘 가는 차가 평소보다 많이 지나간다.

해마다 4월 4일이나 5일에 드는 절기, 청명(淸明)이다. 올해는 4월 5일 새벽 3시 40분에 들었다. 24절기의 다섯째, 봄이 가장 깊어지는 자리.

맑을 청(淸)은 물 수(水)에 푸를 청(靑)을 붙인 형성자다. 『설문해자』는 “밝다는 뜻이다. 물이 가라앉아 맑은 모양이다. 水를 따르고 靑이 소리다(朖也 澂水之皃 从水靑聲)”라고 했다. 靑은 뜻이 아니라 소리다. 푸른 물이 아니라 가라앉아 맑아진 물이 이 글자의 본뜻이다. 밝을 명(明)은 조금 뜻밖이다. 흔히 해(日)와 달(月)을 나란히 놓아 밝다는 뜻이 되었다고 설명하지만, 『설문해자』가 표제자로 세운 것은 明이 아니라 朙이고, 풀이는 “비추는 것이다. 月을 따르고 囧을 따른다(照也 从月从囧)”이다. 囧은 창이다. 단옥재는 “月을 따른 것은 달이 해의 빛을 빛으로 삼기 때문이고, 囧을 따른 것은 창으로 환히 드는 밝음의 뜻을 취한 것”이라 했다. 창으로 드는 달빛인 셈이다. 다만 갑골문에는 해와 달을 나란히 둔 자형도 함께 보이고, 오늘 쓰는 明은 『설문해자』가 고문(古文)으로 실어 둔 日 쪽 계열이 굳어진 것이다. 두 그림이 오래 겹쳐 온 글자다. 어느 쪽이든 이 절기의 이름은 정직하다. 물이 가라앉아 맑고, 빛이 들어 밝은 때.

청명은 한식의 하루 전날이거나 때로 한식과 같은 날이 된다. 식목일과도 대개 겹친다. 농사력으로 청명 무렵에 하는 일은 논밭둑을 손질하는 가래질이다. 논농사의 밑준비다. 볍씨를 담그고 못자리판을 만드는 일은 다음 절기 곡우의 몫이라, 농사를 많이 짓는 집에서는 청명과 곡우 사이에 서둘러 일꾼을 구하기도 했다. 요즘 그 일꾼은 농협 육묘장이 맡는다. 상토 포대와 모판 트레이가 마을회관 앞에 쌓이기 시작하는 때가 이 무렵이다.

부엌 쪽 이야기를 해야겠다. 청명 식탁의 한가운데에 쑥이 있다. 갓 올라온 어린 쑥을 캐 떡에 넣거나 국으로 끓이는 절기. 쑥의 향이 한 해 중 가장 깊은 때다. 봄나물의 절정이 지나가는 자리에서 쑥은 한 박자 늦게 절정에 든다. 길가 쑥은 차가 지나다니는 자리라 캐지 않고, 밭둑 안쪽 것을 캔다. 술로는 청명주(淸明酒)가 있다. 이름 그대로 청명 무렵에 쓰려고 빚은 술로, 『주방문』·『음식보』·『임원경제지』·『양주방』 같은 조선의 요리서에 담그는 법이 실려 있다. 찹쌀로 죽을 쑤어 누룩과 밀가루로 밑술을 앉히고, 이튿날 찐 찹쌀을 덧하여 찬 곳에 두었다가 이레 뒤 맑아지면 떠서 썼다. 한강 상류의 배가 모이던 충주 일대에서 특히 이름이 났고, 충주 청명주는 지금도 충청북도 무형유산으로 이어진다. 청명주와 쑥떡이 만나는 상이 봄의 가장 부드러운 상이다.

청명에 얽힌 가장 또렷한 기록은 불이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 청명조는 “대궐에서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켜 각 관청에 나누어주는데, 이것은 중국의 주나라 이래 당나라·송나라에서도 행하여지던 예로부터의 제도”라고 적었다. 임금이 새 불을 내리면 지방 수령을 거쳐 백성에게까지 나뉘었다.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찬밥을 먹어야 했다. 한식(寒食)이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다만 김매순의 『열양세시기』는 같은 일을 청명조가 아니라 한식조에 적었고, 실제로 불은 한식 쪽에 더 가까운 일이다. 청명과 한식은 날짜가 붙어 다니는 탓에 예부터 자주 뒤섞였다.

이 즈음 가족이 모여 성묘를 갔다. 봄의 성묘가 청명과 한식에 놓인 것이다. 묘 옆에 새 풀이 돋고 그 위에 봄 음식을 차렸다. 아침에 마을길을 지나간 차들이 그 길을 가는 중이다.

다음 절기는 곡우(穀雨), 올해는 4월 20일이다. 곡식을 자라게 하는 봄비가 내리는 절기.

비가 씻어 간 아침에, 사람은 조상을 찾는다. 맑아진 자리에서 돌아보는 일이 이 절기의 오래된 버릇이다.

참고: 절기 시각은 한국천문연구원 24절기 입기 시각 자료, 淸·朙의 자의는 『설문해자』와 단옥재 『설문해자주』, 새 불은 홍석모 『동국세시기』(1849) 청명조·김매순 『열양세시기』(1819) 한식조, 농사·쑥·청명주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청명·청명주 항목)·국가유산청 충청북도 무형유산 「충주 청명주」. 절기 날짜는 해마다 하루 이틀 움직입니다.

이 계절, 더 깊이

2026.04.05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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