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양념인데 맛이 달라진다 — 손에 남은 한 사람의 시간

같은 양념·같은 불·같은 솥인데도 맛이 다르다. 손맛은 솜씨가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낸 시간이 손에 남는 방식이다.

어릴 적 어머니 부엌에서는 이상한 일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같은 나물이었습니다. 같은 양념을 넣고, 같은 솥에 올렸습니다. 불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맛은 달랐습니다.

어머니가 무친 나물은 깊었고, 여동생이 따라 무친 것은 어딘가 비어 있었습니다. 재료가 다른 것도 아니고, 양념이 모자란 것도 아닌데 한입만 먹어도 차이가 났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그 차이를 오래전부터 손맛이라고 불러 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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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책에는 자주 이런 말이 적혀 있습니다.

적당한 불에 끓입니다. 노릇해질 때까지 볶습니다. 조금 더 익혀 줍니다.

숫자로 바꾸면 더 정확할 것입니다. 몇 도의 불인지, 몇 분을 끓여야 하는지.

하지만 오래 부엌에 선 사람들은 숫자보다 먼저 시간을 압니다. 조금만 더 두면 숨이 죽는 순간. 지금 불을 줄여야 국물이 탁해지지 않는다는 때. 30초만 지나도 식감이 달라지는 자리.

그 짧은 시간을 손이 기억합니다.

1분과 30초의 거리. 어쩌면 손맛은 그 거리 안에서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머니는 누구에게 그 시간을 배웠을까요. 아마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을 겁니다.

다만 매일 같은 부엌에 서 있었을 뿐입니다. 매일 된장을 풀고, 매일 솥뚜껑을 열고, 매일 저녁상을 차렸을 뿐입니다.

겨울 저녁마다 끓던 된장찌개와, 새벽마다 씻어 놓던 쌀과, 손님이 오던 날 한 그릇 더 올라가던 밥. 그 오래 반복된 시간이 조금씩 손에 남았을 것입니다.


손맛은 솜씨보다 시간에 가까운 말입니다.

솜씨는 배울 수 있습니다. 동영상을 보고 따라 할 수도 있고, 레시피를 적어 두었다가 그대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손맛은 쉽게 흉내 낼 수 없습니다. 같은 양념 비율을 맞추어도, 같은 냄비를 써도, 같은 불에 올려도 어쩐지 다른 맛이 납니다.

그 사람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겨울 새벽의 국 끓는 냄새와, 늦은 밤 식어 가는 부엌과, 아이를 기다리며 데워 두던 찌개 같은 것들. 살아낸 시간들이 조용히 손끝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낸 시간이 조용히 손끝에 남는다.

그래서 어머니의 손맛은 끝내 어머니의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오래 곁에서 배워도 그 시간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으니까요.

어머니의 30년과 60년은 레시피 한 장으로 건너갈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손맛은 전해지는 기술이라기보다,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손에 남는 방식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저녁상을 차립니다. 무를 썰고, 된장을 풀고, 국물이 끓기를 기다립니다.

그 평범한 한 끼 위에도 조용히 시간이 쌓이고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누군가는 또 그 맛을 기억하겠지요.

“이상하게 집에서 먹던 그 맛이 난다.”

그 말 한마디 속에는 오래 살아낸 한 사람의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손맛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쩌면 한 사람의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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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3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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