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채소가 원래 이런 단맛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다. 5월 어느 저녁, 시장 초입에서 막 들어온 햇양파 한 망을 처음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5월 어느 저녁, 시장 초입에서 막 들어온 햇양파 한 망을 처음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알은 아직 작았고, 껍질은 종이처럼 얇았다. 겉에는 자줏빛이 희미하게 감돌았다.
나는 그것을 한 망 사 들고 돌아오다 말고 문득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이건 어떻게 먹어요?”
어머니의 대답은 짧았다.
“그냥 한입 베어 봐.”
그날 저녁, 나는 처음으로 그것을 생으로 베어 물었다.
처음에는 특유의 알싸한 기운이 먼저 올라왔다. 혀끝이 살짝 매워지고 눈 안쪽까지 뜨거운 기운이 번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 번째쯤 씹고 있을 때부터 그 뒤편에서 단맛이 천천히 따라 나왔다. 아주 느리게, 조용히.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 멈춰 있었다.
그 채소가 원래 이런 단맛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다.
햇양파는 계절이 짧다.
햇양파는 대개 5월 끝 무렵 시장에 들어왔다가 6월 초쯤이면 금세 자취를 감춘다. 껍질은 얇고, 속은 단단하며, 수분이 많다. 오래 두면 쉽게 물러지기 때문에 겨울 저장용처럼 오래 버티지 못한다. 대신 그 짧은 시기에만 특유의 맑은 단맛이 살아 있다.
한 알을 손에 들면 생각보다 가볍게 느껴지는데, 막상 칼을 넣어 보면 안쪽에는 즙이 단단히 차 있다. 마치 봄 끝의 기운이 둥글게 저장되어 있는 것 같다.
어머니는 그것으로 장아찌를 담그셨다.
얇게 썬 것을 유리병에 담고, 식초와 물, 설탕을 섞은 절임물을 부어 두셨다. 하루쯤 지나 병뚜껑을 열면 처음의 매운 기운은 어느새 가라앉고 새콤한 단맛만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어릴 적 그 맛이 늘 신기했다. 분명 매웠던 것이 시간을 지나며 전혀 다른 얼굴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것을 어렵게 설명하지 않으셨다.
“하루 지나면 맛이 들어.”
그 말이면 충분했다.
부엌에서는 대개 시간이 조용히 일을 끝내고 있었다.
팬 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기름을 두르고 채 썬 것을 천천히 볶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알싸한 향이 부엌 안으로 훅 올라온다. 눈이 맵고, 코끝이 뜨거워진다.
그런데 오래 볶다 보면 어느 순간 그 향이 가라앉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묵직하고 깊은 단내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오래 볶아야 단맛이 나.”
그 짧은 말 안에 어머니의 국과 찌개와 볶음이 다 들어 있었다.
불을 세게 쓰는 중식 부엌에서 양파가 빠지지 않는 것도 그래서일지 모른다. 뜨거운 불을 지나야 단맛이 가장 또렷해지는 채소니까.
매운맛 뒤에 단맛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채소만큼 분명하게 알려 주는 것도 드물다.
처음에는 날카롭고, 시간이 지나면 부드러워진다. 그 사이에는 언제나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 오래 볶아야 하고, 하루쯤 절여 두어야 하고, 천천히 숨이 죽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안쪽의 단맛이 모습을 드러낸다.
부엌에서 오래 배우게 되는 것들도 대개 비슷하다. 급하게는 잘 보이지 않는 것들.
요즘도 5월 시장에서 햇양파가 처음 보이면 괜히 한 망 사 오게 된다. 검붉은 껍질이 얇게 벗겨진 것들, 흙기운이 아직 조금 남아 있는 것들.
봉지를 들고 돌아오는 길이면 이상하게도 늘 어머니 부엌이 함께 떠오른다. 유리병 안에서 천천히 맛이 들던 장아찌와, 팬 위에서 오래 볶이던 저녁 냄새와, “조금 더 둬 봐”라고 말씀하시던 목소리.
매운맛은 금세 지나가지만 단맛은 늘 늦게 온다. 그리고 어떤 계절은 그 늦게 오는 맛 덕분에 오래 기억된다.
2025.05.25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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