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자취 시절, 본가에 올라갈 때마다 엄마는 늘 한 통을 더 넣으셨다. 엄마의 냉장고는 음식이 아니라 마음을 보관하는 곳이었다.
“다 먹고 가.” “있는 거 좀 싸 가.” “혼자 있으면 밥 안 챙겨 먹잖아.”
젊은 날 대구에서 자취하면서, 본가에 올라갈 때마다 늘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새벽 두 시쯤. 잠이 오지 않아 물을 마시러 부엌에 나가면, 이상하게 꼭 엄마의 냉장고 앞에 서게 됩니다.
문을 열면 하얀 불빛 아래로 통들이 층층이 들어 있습니다. 김치통. 콩자반 통. 장아찌 병. 얼린 떡국 떡. 된장 담은 작은 용기. 누가 주고 갔다는 이름 모를 반찬 한 통까지.
분명 어제도 한가득 꺼내 먹었는데, 왜 늘 무언가가 또 남아 있는 걸까요.
· · ·
오랫동안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왜 그렇게까지 냉장고를 채워 두실까.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알게 됩니다.
엄마의 냉장고는 음식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마음을 보관하는 곳이었다는 것을.
한 칸 한 칸 안에는 누군가가 들어 있습니다. 이웃이 건네준 나물. 김장철에 담가 둔 동치미. 명절 지나 남겨 둔 전. 혹시 몰라 얼려 둔 국거리.
그리고 그 대부분은 자식에게로 향해 있습니다. 엄마는 늘 누군가 먹을 것을 남겨 두는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하셨던 것 같습니다.
내가 어릴 적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만 해도, 시골 마을에서는 대부분 김치를 김장독에 담아 땅에 묻었습니다. 뒷마당 햇볕이 깊지 않은 자리에 독을 묻어 두고, 겨우내 한 포기씩 꺼내 먹었습니다.
냉장고가 없던 겨울. 한철 먹을 김치를 담그고, 장을 담그고, 곡식을 아껴 두는 일이 곧 가족의 겨울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먹을 것을 저장한다는 것은 배고프지 않게 하는 일이었고, 누군가를 끝까지 돌본다는 뜻이었습니다.
외할머니도 어머니도, 그 손을 이어받으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세상이 아무리 달라져도, 엄마의 마음은 쉽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마트는 밤늦게까지 열려 있고, 배달 음식은 금방 도착하는데도 엄마는 여전히 말합니다.
“혹시 모르니까.” “네가 내려왔는데 없으면 어떡해.” “있는 게 낫지.”
그 말들이 냉장고 안을 오래 채워 두고 있습니다.
대구로 다시 내려오는 날이면, 엄마는 꼭 부엌으로 급히 들어가십니다.
“잠깐만.” “이거 좀 가져가.” “아, 이것도 넣어야지.”
밀폐용기와 지퍼백이 어느새 식탁 위에 하나둘 쌓입니다. 김치찌개용 김치. 멸치볶음. 콩자반. 얼려 둔 국.
괜찮다고 말해도 엄마는 꼭 한 통을 더 넣으십니다.
자취방에 돌아와 가방을 열면, 그 안에는 음식만 들어 있는 게 아닙니다.
혼자 있는 밤, 네 옆에 내가 없으니까.
엄마는 그 말을 직접 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밀폐용기 뚜껑 위에 작은 글씨로 적어 두십니다.
‘김치찌개용’ ‘멸치볶음’ ‘데워 먹어’
엄마들은 대개, 말 대신 반찬을 보내는 사람들 같습니다.
외할머니의 김장독과, 엄마의 큰 냉장고와, 자식 세대의 작은 냉장칸까지. 모양은 달라졌어도, 누군가를 먹이려는 마음만은 오래 이어집니다.
언젠가 우리도 엄마 집이 아닌 곳에서 혼자 냉장고를 열게 되는 날이 옵니다.
그 안에는 배달 음식 용기와, 먹다 남은 음료수와, 대충 사 온 반찬 몇 개가 들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엄마 냉장고처럼 정체 모를 무언가가 한 통 더 있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쯤이면 알게 됩니다.
엄마의 냉장고가 늘 가득했던 이유는, 언젠가 자식이 문을 열고 들어올 거라는 기대가 그 안에서 오래 살아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오늘 저녁, 본가에 전화 한 통 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엄마, 냉장고에 뭐 있어?”
그 말은 아마 김치 이야기가 아닐 겁니다.
엄마 보고 싶어.
한국 사람들은 가끔 그 말을 이렇게 돌아서 표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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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2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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