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이 485도에 이르는 장작 화덕 앞. 한 조각의 도우가 60초 동안 자기 모양을 만든다. 1889년 왕비의 이름을 얻었다는 일화는, 근거로 쓰이던 감사장이 위조로 지목되면서 학계의 논쟁거리가 됐다. AVPN 규정집·도우 비율·산 마르자노 토마토·부팔라 모차렐라·집에서 굽는 법까지.
마르가리타 — 나폴리가 깃발의 세 색을 도우 위에 얹은 피자.
1889년 왕비의 이름을 얻었다고 전한다. 다만 그 세 색은 그전부터 나폴리 화덕 위에 있었다.
마르가리타를 처음 만난 건 책 속의 한 줄이었다. 1889년 6월, 카포디몬테 궁전. 그 한 줄이 두 달 뒤 동네에 새로 생긴 피체리아의 화덕 위에서 살아나는 것을 보았다. 천장이 485도에 이른다는 장작 화덕 안에서 단 60초 — 도우가 부풀고, 토마토가 끓고, 모차렐라가 녹고, 바질의 녹색이 살짝 시드는 그 짧은 시간이 도시의 색을 한 조각에 담는 일이라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 그 책 속의 한 줄이 사실은 백 년 넘게 다투어 온 이야기라는 것도.
마르가리타는 단순한 피자가 아니다. 도우라는 재료가 화덕이라는 조건을 만나는 사건의 형식이다. 토핑은 그 사건을 색으로 증명할 뿐이다. 빨강·흰색·녹색은 통일 이탈리아의 깃발이기도 하고, 도우 위의 가장 정직한 증거이기도 하다.
1889년 6월, 카포디몬테 궁전 — 전해 오는 이야기
전하는 이야기는 이렇다. 1889년 6월, 이탈리아 왕국의 왕비 마르게리타 디 사보이아(Margherita di Savoia)가 나폴리 카포디몬테 궁전에 머물던 며칠. 피자 장인 라파엘레 에스포지토(Raffaele Esposito)가 세 가지 피자를 구워 올렸고, 그중 토마토와 모차렐라와 바질을 얹은 한 장이 왕비의 마음에 들어 그의 이름을 얻었다.
이 이야기의 유일한 근거는 감사장 한 통이다. 1889년 6월 11일 자, 왕실 식사 담당관 갈리 카밀로(Galli Camillo)의 이름으로 라파엘레 에스포지토 브란디 앞에 보낸 짧은 글. 세 가지 피자가 훌륭했다는 내용이 전부다. 그 피체리아 — 1930년대에 이름이 바뀐 오늘의 피체리아 브란디 — 벽에 지금도 걸려 있다.
문제는 그 편지다. 역사학자 재커리 노왁(Zachary Nowak)이 2014년 학술지 「Food, Culture & Society」에 실은 연구는 이 문서를 위조로 본다. 왕실 인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갈리 카밀로의 서명이 이탈리아 문서고에 남은 다른 서명과 맞지 않는다. 피자 장인의 이름도 틀렸다. 그는 라파엘레 에스포지토였지 에스포지토 브란디가 아니었다. 브란디는 아내 쪽 성이다. 당시 신문 어디에도 이 일을 적은 기사가 없다.
남아 있는 다른 기록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1880년 미국 신문에 실린 나폴리 기사에는 왕비가 이미 피자를 즐겼고, 궁으로 불려 온 피자 장인이 서른다섯 가지 차림표를 올렸다고 적혀 있다. 에스포지토가 피체리아를 사들인 것은 1883년이다. 세 색의 조합도 1889년보다 앞선다. 1853년 에마누엘레 로코(Emanuele Rocco)가 나폴리 풍속을 적으며 바질·모차렐라·토마토를 얹은 피자를 이미 기록했고, 1866년 프란체스코 데부샤르(Francesco DeBouchard)의 책에도 비슷한 서술이 있다.
그러니 1889년은 이 피자가 태어난 해가 아니다.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는 해다. 왕비가 정말 그 화덕 앞에 있었는지는 아무도 확인해 주지 못한다. 다만 도우 위의 세 색은, 왕비가 오기 훨씬 전부터 나폴리 골목에 있었다.
왜 단순한 피자가 가장 어려운가
마르가리타는 가장 단순한 피자다. 그러나 단순한 만큼 가장 어렵다. 그 둘이 다른 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마르가리타가 백 년 넘게 증명해 왔다.
도우 네 재료, 눈에 보이는 세 색, 화덕 60초. 모든 조건이 정직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어디가 어긋나면 그 어긋남도 정직하게 드러난다. 토핑이 많으면 그 어긋남을 가릴 수 있지만, 마르가리타는 그럴 토핑이 없다.
VPN — 규정집이 정한 것들
나폴리 피자는 VPN(Vera Pizza Napoletana — 진정한 나폴리 피자) 인증으로 보호받는다. 1984년 6월, 나폴리의 오래된 피자 가문들이 세운 협회(AVPN)가 만든 규정집(disciplinare)이 그 기준이다. 핵심만 추리면 이렇다.
- 도우 — 밀가루·물·소금·효모. 유지와 설탕은 넣지 않는다
- 밀가루 — 00형(또는 0형), 중력 정도의 힘(W 250~320)
- 발효 — 권장 8시간에서 24시간. 기준 온도 23℃
- 반죽 덩어리 — 200~280g
- 두께 — 가운데 0.25cm(±10%), 가장자리(코르니치오네) 1~2cm
- 지름 — 22~35cm. 35cm를 넘지 않는다
- 펴기 — 손으로만. 밀대와 기계 프레스는 쓰지 않는다
- 화덕 — 장작 화덕(forno a legna). 바닥 380~430℃, 천장 약 485℃
- 굽는 시간 — 60~90초를 넘기지 않는다
- 토마토 — 산 마르자노 아그로 사르네세노체리노 DOP 권장. 코르바라 방울토마토, 피엔놀로 델 베수비오 DOP, 로마종도 허용
- 치즈 — 모차렐라 디 부팔라 캄파나 DOP 또는 모차렐라 STG, 남부 아펜니노 피오르 디 라테
한 가지 덧붙이면, 규정집이 적은 마르게리타의 재료는 세 가지가 아니다. 홀토마토 60~80g, 모차렐라 또는 피오르 디 라테 80~100g, 바질 몇 잎, 올리브유 6~7g, 그리고 갈아 낸 경성 치즈 5~7g. 세 색은 눈에 보이는 것이고, 기름과 치즈는 그 아래에 있다.
도우 — 단 네 재료의 시간
마르가리타의 결은 도우에서 거의 결정된다. 단 네 가지 재료(밀가루·물·소금·효모)로 만드는 도우의 차이가 마지막 한 조각의 질을 가른다. 이 음식이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어려운 이유다.
규정집이 적은 기준은 물 1리터에 밀가루 1,600~1,800g(수분율 55~62%), 소금 40~60g, 생효모 0.1~3g이다. 23℃에서 8시간 발효면 생효모 1.5g, 24시간이면 0.3g. 반죽이 커질수록 효모의 양은 오히려 줄어든다.
한 판 분량으로 줄이면 — 밀가루(Tipo 00) 250g · 물 150g(수분율 약 60%) · 소금 7g · 생효모 0.05~0.25g(발효 시간이 길수록 적게).
발효 시간이 결정적이다. 규정집이 권하는 것은 8시간에서 24시간 사이. 흔히 말하는 상온 8시간 더하기 냉장 24시간의 이중 발효는 규정집에 없는 가정식 응용이지만, 온도를 잡기 어려운 부엌에서는 다루기가 쉽다. 글루텐의 망이 단번에 풀리지 않고 천천히 쌓이면서, 화덕 안에서 도우 가장자리가 단숨에 부풀어 오른다.
토마토와 모차렐라 — 화산과 물소
두 토핑은 다른 풍토에서 왔다. 산 마르자노 토마토는 베수비오 화산 발치, 아그로 사르네세노체리노 평야에서 자란다. 사르노 들판의 흙은 대부분 화산이 뿜어낸 부스러기다. DOP 생산 규정과 캄파니아 주 농업 자료는 이 토마토의 새콤달콤한 맛을 그 화산토의 미네랄과 온화한 기후에서 온 것으로 설명한다. 모차렐라 디 부팔라 캄파나 DOP는 캄파니아·라치오·풀리아·몰리세의 정해진 산지에서, 그 산지 안에서 기른 이탈리아 지중해종 물소의 신선한 젖으로만 만든다.
화산이 키운 빨강과 물가가 키운 흰색이 도우 위에서 만난다. 같은 캄파니아가 다른 두 풍경으로 이 도우를 빚었다.
규정집은 산 마르자노 DOP 홀토마토를 물기를 빼고 손으로 으깨어 쓰라고 적는다. 기계로 갈면 씨가 부서져 쓴맛이 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뒤로는 다시 열을 가하지 않는다. 가열한 소스가 아니라 생토마토의 질감을 살리는, 60초의 비결.
60초의 과학 — 화덕의 조건
나폴리 피자의 핵심은 장작 화덕에서 60~90초 안에 굽는다는 점이다. 규정집이 적은 온도는 굽는 바닥 380~430℃, 천장 약 485℃. 그 짧은 시간 동안 도우 표면이 살짝 그을리고(leoparding), 가장자리가 부풀고, 토마토가 끓고, 치즈가 녹는다. 조금 더 길어지면 도우가 마르고, 조금 짧으면 가운데가 익지 않는다.
가정용 오븐의 한계는 250~280℃다. 그래서 가정에서는 피자 스톤이나 강철판을 30분 이상 최고 온도로 예열해 바닥 온도를 끌어올리거나, 화덕형 가정용 오븐(Ooni · Effeuno)을 쓴다.
집에서 굽는 법
- 도우 발효 — 위 비율로 반죽 후 8~24시간. 부엌이 서늘하면 상온에 두고, 더우면 냉장으로 옮긴다.
- 오븐 예열 — 최고 온도로, 피자 스톤을 30분 이상 가열.
- 도우 펴기 — 손으로(밀대 ✗) 가운데에서 바깥으로 부드럽게. 가장자리는 눌러 죽이지 않는다.
- 토핑 — 손으로 으깬 산 마르자노 홀토마토 60~80g → 모차렐라 80~100g → 바질 몇 잎 → 갈아 낸 경성 치즈 조금 → 올리브유 한 바퀴.
- 굽기 — 250℃에서 6~8분, 가장자리가 부풀고 표면이 살짝 그을 때.
- 마무리 — 꺼낸 직후 바질 한 잎 더, 올리브유 한 바퀴.
식탁의 쓰임 — 페어링
화이트 와인은 캄파니아 지역의 Falanghina·Greco di Tufo가 정통이다. 레드 와인이라면 Aglianico·Chianti. 맥주는 라거(Peroni)가 가장 가볍고, 산미가 살짝 있는 탄산수로도 충분하다.
마르가리타가 가장 잘 어울리는 장면은 정찬이 아니다. 도시 골목 어귀, 친구와 나누는 한 조각의 저녁. 나폴리에서 시작된 그 식탁이 한국 어느 동네 피체리아의 화덕 앞으로 그대로 옮겨 와 있다.
왜 같은 모양으로 남았는가
도우의 네 재료 중 하나가 빠지거나, 발효 시간이 짧거나, 화덕 온도가 낮거나, 토마토를 가열하거나 — 그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마르가리타는 마르가리타가 아니라 마르가리타라고 불리는 다른 피자가 된다. 이름이 붙기 훨씬 전부터 나폴리 화덕 위에 있던 도우 한 장이 지금까지 같은 모양, 같은 비율, 같은 시간으로 남은 까닭이다.
나폴리에는 피체리아가 수천 곳 있다.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은 8,200곳을 적었다. 그중 VPN 인증을 받은 곳은 일부다. 인증 없이도 같은 결로 굽는 부엌이 훨씬 많다. 이 한 조각이 살아남은 까닭은 정통의 권위가 아니라 비율의 정직함이다.
참고: AVPN 국제 규정집(Disciplinare AVPN 2022), 모차렐라 디 부팔라 캄파나 DOP·산 마르자노 아그로 사르네세노체리노 DOP 생산 규정, Zachary Nowak 「Folklore, Fakelore, History: Invented Tradition and the Origins of the Pizza Margherita」(Food, Culture & Society, 2014), Antonio Mattozzi 「Inventing the Pizzeria」, Smithsonian Magazine. 기원담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전해 오는 이야기로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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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4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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