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소리 지른 밤 — 축구와 치맥, 그 여름 저녁

2002년 대구, 왜인지 그녀를 찾아 함께 본 경기. 모르는 사람과 처음 어깨를 걸던 밤부터 세계로 번진 치맥, 평일 낮의 2026 월드컵까지 — 스코어와 관계없이 지지 않는 그 밤에 대하여. 쿡톡의 편지.

2002년 여름의 대구를, 저는 붉은색으로 기억합니다.
낮에도 거리가 붉었고, 경기가 있는 밤이면 도시 전체가 한 벌의 빨간 티셔츠 같았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저는 늘 그녀를 찾았습니다. 같이 보자고, 굳이.
지금도 내게 그녀는 그때 그 모습으로 아련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무렵 저는 대구에서 살았고, 젊은 열기에 휩쓸려 대명동의 대학 캠퍼스로 향했습니다. 대형 화면 앞에는 이미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골이 터졌습니다. 그 순간 저는 생전 처음, 이름도 모르는 옆 사람과 끌어안았습니다. 낯선 이와 어깨를 걸고 같은 자리에서 뛰었습니다. 누구냐고 묻지 않았고, 물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기쁨은 혼자 들고 있으면, 어쩐지 줄어듭니다.

왜 하필 그녀였는지, 왜 모르는 사람을 끌어안았는지 — 돌아보면 같은 마음 하나였습니다. 슬픔은 혼자 삼킬 수 있어도, 기쁨은 누군가에게 건네야 비로소 커집니다. 그래서 큰 순간이 오면, 우리는 먼저 곁에 둘 사람을 찾습니다. 그날 제가 그녀를 찾은 것도, 낯선 이와 어깨를 건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겁니다.

· · ·

그 마음이 꼭 거창한 경기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축구를 혼자 보면 그건 경기입니다. 같이 보면, 그건 저녁이 됩니다. 치킨과 맥주가 상에 오르는 것도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모일 핑계가 하나쯤 필요해서입니다. 누군가는 양념을, 누군가는 후라이드를 시키고, 잔이 몇 개 부족하면 머그컵까지 꺼냅니다.

정작 많은 이야기는 경기 중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오갑니다. 광고로 화면이 넘어가면 그제야 서로의 안부를 묻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맥주는 미지근해지고 치킨은 한 김 식지만, 그때는 아무도 그걸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날 거리로 나온 건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폴란드와의 첫 경기에 50만이던 거리 응원은, 독일과의 준결승에 이르러 700만으로 불어났습니다. 인구의 일곱에 하나가 빨간 티셔츠를 입고 광장으로 나왔고, 거기 못 간 사람들은 집과 호프집에서 같은 시각에 잔을 들었습니다. 그 밤 전국의 식탁마다 식어 가는 치킨이 한 조각씩 놓여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준결승에서, 우리는 졌습니다. 하지만, ‘KOREA DNA’가 세계로 퍼진 원년이 아닌가 합니다.

기쁨은 함께 나누면 배가 됩니다.


치맥을 저는 오래 우리만의 저녁인 줄 알았습니다.

2002년 그 여름의 저녁이던 치맥이 세계로 번진 건, 한참 뒤의 일입니다. 2014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여주인공이 치킨에 맥주를 곁들이는 장면이 거듭 나온 뒤로, 바다 건너 중국에서 치맥 열풍이 불었습니다. 원래 맥주 안주로 치킨을 즐기지 않던 곳인데도, 상하이에서는 한국식 치킨을 사려 세 시간씩 줄을 섰고, 매출은 두 배로 뛰었습니다. ‘치맥’이라는 말이 그대로 검색창에 올랐습니다.

세계가 가져간 건 치킨과 맥주라는 메뉴가 아니었습니다. 같이 둘러앉아 한 화면을 보고, 한 골에 같이 소리치는 그 저녁이었습니다. 번역된 건 음식이 아니라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올여름, 월드컵은 멕시코에서 다시 막을 올렸습니다. 반세기 넘게 세 번이나 개막전을 치른 아즈텍 경기장에, 8만 명의 함성이 다시 찼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이번 대회는 평일 낮 경기가 많습니다. 다들 일하는 시간에 경기가 흐르고, 거리에 모이기 어려운 월드컵이라는 말이 벌써 나옵니다. 2002년처럼 700만이 광장을 채우는 밤은,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이번 월드컵의 한 장면에는 한국의 목소리가 깊이 섞였습니다. 공식 주제가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DNA〉입니다. 한국계 싱어송라이터 이재(EJAE)가 한국어 가사를 직접 써, 멕시코시티 개막 무대에서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와 함께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또 넘어져도 난 일어나’라는 한국어 한 줄이 아즈텍 경기장에 울렸습니다. 결승전 사상 첫 하프타임 쇼에는 방탄소년단이 마돈나·샤키라와 나란히 서고, 로스앤젤레스 개막 무대에는 블랙핑크의 리사도 올랐습니다.

‘국뽕’이라는 말은 쿡톡의 결과 거리가 있지만, 이건 가만히 적어 둡니다. 세계가 끝내 가져간 건 음식도 노래도 아니라, 같이 둘러앉아 떠들썩하게 나누려는 마음이었습니다. 굳이 ‘DNA’를 말하자면, 한국인의 그것은 기쁨 앞에서 먼저 곁에 둘 사람을 찾는, 그 오래된 버릇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점심시간에 휴대폰 하나를 같이 들여다볼 테고, 누군가는 퇴근길에 치킨을 시켜 둘러앉을 겁니다. 광장이 작아졌을 뿐, 같이 보려는 마음까지 작아진 건 아닙니다.


경기가 끝나면 점수는 금세 잊힙니다. 몇 대 몇이었는지, 누가 넣었는지 — 며칠이면 흐릿해집니다. 오래 남는 건 따로 있습니다. 그날 누구와 어깨를 부딪치며 소리를 질렀는지, 식은 치킨을 마지막에 누가 말없이 집어 먹었는지.

치킨은 식고 맥주는 김이 빠졌는데, 그 밤만은 좀처럼 식지 않습니다. 경기는 이기기도, 지기도 했습니다. 2002년 뜨겁게 함께 했던 밤들은 스코어와 관계없이, 우리는 항상 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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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5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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