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전서 · 장 — 메주 하나에서 갈라진다

볕 좋은 날의 장독대에는 크고 작은 독이 줄지어 앉아 있다. 같은 자리에 놓였는데 안에 든 장은 색도, 깊이도, 익는 속도도 제각각이다. 한 집의 한 해 맛이 그 독들 안에서 조용히 익어 간다.

우리는 ‘장’을 한 가지로 뭉뚱그린다. 그런데 『시의전서』는 한 항목 안에 여러 장을 나란히 적어 둔다 — 간장, 진장, 즙장. 모두 메주에서 시작하지만, 담그는 때와 법에 따라 저마다 다른 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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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탕은 간장이다. 원문은 ‘메주 한 말에 물 몇 동이, 소금 일곱 되씩 담그되, 늦게 담그면 소금을 좀 더하라’ 한다.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 두면, 떠오른 맑은 물이 간장이 되고 건져 낸 메주가 된장이 된다. 같은 독에서 두 가지가 한꺼번에 갈라지는 셈이다.

진장(眞醬)은 더 진하고 깊은 장이다. 구월에 검은콩으로 메주를 쑤어 뭉쳐 말리고, 소금물에 담가 헛간에 두되 볕을 쏘여 가며 오래 익힌다. 검은콩과 긴 시간이 빛도 맛도 진한 장을 만든다. 무엇을 넣어 진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 두어 진해지는 장이다.

즙장(汁醬)은 거꾸로, 빨리 익혀 바로 먹는 여름 장이다. 칠월에 콩에 밀기울을 섞어 메주를 쑤고, 찰밥에 담가 따뜻한 데서 빠르게 익힌다. 다 익으면 오이와 가지를 넣어 먹는다. 다른 장이 한 해를 기다린다면, 즙장은 한여름의 더운 기운을 빌려 며칠 만에 익혀 내는 장이다. 가장 더운 철에, 가장 급히 익는 장이 있었던 것이다.

이 장들을 가른 것은 결국 ‘콩과 때와 기다림’이다. 흰콩이냐 검은콩이냐, 밀기울을 섞느냐, 정월이냐 칠월이냐 구월이냐, 한 해를 묵히느냐 며칠을 띄우느냐. 같은 메주에서 출발해도 무엇을 어느 철에 얼마나 익히느냐에 따라 장은 갈라진다. 장은 재료가 아니라 시간과 때로 갈리는 음식이었다.

장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메주 하나가, 때와 기다림에 따라 여러 장이 되었다.


오늘의 부엌에서 가장 해볼 만한 것은 여름 즙장이다. 밀기울을 섞어 띄운 메주가루에 찰밥과 소금을 더해 되직하게 개고, 항아리에 담아 따뜻한 곳에서 며칠 익힌다. 신맛이 돌며 구수해지면 어슷 썬 오이와 가지를 넣어 밥에 곁들인다. 간장·된장·진장은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 떠오른 것과 건진 것으로 가르되, 진장은 더 오래·검은콩으로 둔다. 원문은 분량을 가리키는 글자에 결락이 있어, 정밀한 비율은 정본 대조 후 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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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이 장맛이 다른 까닭이 여기 있다. 같은 메주, 같은 소금이라도 담그는 손과 쪼이는 볕과 기다리는 시간이 다르면 맛이 갈린다. 한 항목에 적힌 여러 장은, 한 가지 재료가 얼마나 다양한 시간을 견딜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장독대의 독들이 저마다 다른 빛으로 익는 건, 그 안에서 서로 다른 기다림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낱말 풀이 〈이 글의 옛말〉

  • 메주 — 콩을 삶아 띄운 발효 덩이. 모든 장의 바탕이다.
  • 진장(眞醬) — 검은콩으로 쑤어 오래 익힌, 빛과 맛이 진한 간장.
  • 즙장(汁醬) — 밀기울 섞은 메주를 찰밥에 담가 빨리 익힌 여름 별미장. 오이·가지를 넣어 먹는다.
  • 밀기울 — 밀을 빻고 남은 속껍질. 즙장 메주에 섞어 빨리 익게 한다.
  • 약고추장 — 찹쌀과 메주에 고춧가루를 섞고 포육·표고로 맛을 더한 별미 고추장(같은 항목에 함께 적힘).

이 글은 『시의전서』(是議全書, 19세기 · 저작권 소멸) 원문을 쿡톡이 한 글자씩 직접 판독·전사한 것에 근거한다. 일부 드문 옛 글자는 짐작 없이 〔?〕로 두었다.

◆ 제철 한 줄 — 즙장은 한여름 더운 기운으로 며칠 만에 익히는 여름 장이다. 산지의 콩과 밀기울로 띄워, 제철 오이·가지를 넣어 한 끼 곁들여 보시길.

이 연재는 전자책 『시의전서, 다시 차리다』(전 6권)로 엮이고 있습니다. → 미리보기 무료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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