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8월 22일이나 23일에 드는 절기. 處의 본뜻은 '곳'이 아니라 '그치다' — 더위가 그치는 자리라는 이름이다.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보름, 이삭 패는 논에 비가 미움받는 까닭과 볕에 책을 말리던 포쇄까지.
저녁 포장을 마치고 창고 문을 닫는데 팔뚝에 모기가 앉지 않는다. 지난주까지는 테이프를 끊는 사이에도 두세 방은 물렸다. 모기 소리가 성글어졌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여름내 극성이던 것들이 하나둘 힘을 잃는 절기다.
해마다 8월 22일이나 23일에 드는 절기, 처서(處暑)다. 올해는 8월 23일 오전 11시 19분에 든다. 24절기의 열넷째.
곳 처(處)라 하지만 이 글자의 본래 뜻은 곳이 아니다. 옛 자형 処는 사람이 안석에 이르러 멈추는 모양이고, 거기에 虍가 소리로 얹혀 지금의 處가 됐다. 본뜻은 그치다, 머무르다. 『월령칠십이후집해』는 그래서 이 절기를 한 문장으로 풀었다. “處는 그침이다. 더위가 여기에 이르러 그친다(暑氣至此而止矣).” 더위가 있는 곳이 아니라 더위가 그치는 자리라는 이름이다. 옛 셈으로 이 보름은 이렇다. 매가 새를 잡아 늘어놓고(鷹乃祭鳥), 천지에 비로소 서늘한 기운이 돌고(天地始肅), 곡식이 익는다(禾乃登). 사냥과 숙살과 결실. 여름의 무성함이 걷히고 거둘 것만 남기는 순서다.
들녘에서는 벼 이삭이 팬다. 이제부터 벼에게 필요한 것은 비가 아니라 볕이다. 그래서 처서의 비는 박한 대접을 받았다. 처서비가 오면 “십리에 천석을 감한다” 했고, “독 안에 든 쌀이 줄어든다”고도 했다. 전북에서는 “처서날 비가 오면 큰애기들이 울고 간다”는 말도 전한다. 대추 농사가 그르쳐 혼수 걱정이 생긴다는 뜻이라 한다. 이삭 패는 논 위의 비 몇 줄기가 겨울 쌀독의 높이를 정한다고 옛사람들은 셈했던 것이다.
농사일은 잠시 숨을 고른다. 백중의 호미씻이가 끝난 뒤라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라는 말대로 어정거리며 지나가는 한가한 때다. 대신 볕을 쓰는 일이 바빠진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이 무렵 부인들과 선비들이 장마에 눅은 옷과 책을 그늘에 말리고(음건) 볕에 말렸다(포쇄)고 적는다. 요즘 볕에 내다 말리는 것은 책보다 장화와 빈 상자, 장마 동안 눅눅해진 창고 구석의 것들이다. 풀이 더 자라지 않는 때이므로 논두렁 풀을 깎고, 산소를 찾아 벌초를 시작하는 것도 처서부터다. 주말이면 마을 뒷산 여기저기서 예초기 소리가 난다. 추석이 한 달 앞이다.
여름내 자라던 것들이 일제히 멈추는 절기. 그런데 멈춤은 끝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풀은 그치고, 벼는 여물기 시작한다. 자라는 계절이 그치는 자리에서 여무는 계절이 선다.
다음 절기는 백로(白露), 올해는 9월 7일이다. 밤이 길어져 새벽 풀잎에 흰 이슬이 맺힌다.
모기가 앉지 않는 팔뚝으로 창고 문을 잠근다. 그친다는 것은 이렇게 작게 온다.
참고: 절기 시각은 한국천문연구원 24절기 입기 시각 자료, 處의 자의와 삼후는 『월령칠십이후집해』·『고려사』 선명력, 속담·풍속은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처서 항목). 절기 날짜는 해마다 하루 이틀 움직입니다.
이 계절, 더 깊이
- 입추(立秋) — 가을은 이름부터 온다
- 백로(白露) — 흰 이슬이 맺히는 밤, 벼가 여무는 낮
- 반말랑이 복숭아란 — 받아서 이틀, 두 가지 맛
- 24절기 — 한 해의 마디마디 — 시리즈 길잡이
2026.08.23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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