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란 시절에는 소원이었고, 넘치는 시절에는 다짐이 됩니다. 『열양세시기』의 한 줄을 추석 앞에 다시 읽었습니다.
추석이 꼭 일주일 남았습니다.
이맘때면 누구나 한 번은 입에 올리는 말이 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 덕담으로 쓰고, 현수막에 걸고, 문자 끝에 붙입니다. 너무 자주 들어서 뜻을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는 말이기도 합니다.
올해는 한 번 멈춰 서서 읽어 보았습니다.
이 말이 글로 남은 자리는 1819년, 한양의 세시풍속을 적은 『열양세시기』입니다. 안동 김씨 문신 김매순이 달마다의 풍속을 적으며 팔월 한가위 항목에 이렇게 썼습니다.
加也勿 減也勿 但願長似嘉俳日
더하지도 말고 덜하지도 말고, 다만 길이 한가위 같기를. (쿡톡 옮김)
앞뒤 문맥은 이렇습니다. 가난한 시골 마을도 이날만은 술을 빚고 닭을 잡고 반찬을 갖춰 상을 차렸다고. 그러니 이 소원은 잔칫상을 본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일 년에 한 번 잔칫상을 차려 본 사람의 것입니다. 나머지 삼백육십 며칠은 그렇지 못했다는 뜻이 그 안에 접혀 있습니다.
더도 말고, 는 넘칠 걱정이 아니라 모자랄 걱정이 만든 말이었습니다.
이백 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우리 상은 한가위가 아닌 날에도 한가위만 합니다. 과일은 철을 넘어 오고, 고기는 언제나 있고, 떡은 사서 먹습니다. 모자라서 빌던 소원이 이제는 다른 쪽에서 읽힙니다. 더도 말고. 이 세 글자가 무겁습니다.
얼마 전 복숭아 상자의 옵션표를 만들다가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2kg 한 상자에 큰 것은 다섯 알, 보통은 일곱 알. 알을 더 넣으면 무게가 넘치고, 덜 넣으면 값이 맞지 않습니다. 농가는 그 사이에서 하루 종일 저울을 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는 덕담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일과였습니다.
올 추석 상은 조금 덜어 차리려 합니다.
토란국 한 그릇, 햇과일 몇 알, 송편은 손으로 빚을 만큼만. 남기지 않을 만큼이 한가위만 한 것이라고, 이백 년 전 문장을 그렇게 고쳐 읽기로 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모자란 시절에는 소원이었고, 넘치는 시절에는 다짐이 됩니다.
참고: 『열양세시기』(김매순, 1819) 팔월 한가위 항목. 서지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열양세시기’ 항목을 따랐습니다. 번역은 쿡톡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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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8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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