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맛

고추를 처음 본 조선 사람은 ‘독이 크다’고 적었다

마당 멍석 위에 펼쳐 말리는 붉은 고추와 장독대

1614년 『지봉유설』은 고추를 '독이 크다'고 적고 왜겨자라 불렀다. 술집에선 소주에 섞어 팔기도 했다. 정말 임진왜란 때 들어왔을까. 문헌과 유전체 연구가 각각 무엇을 말하는지, 독한 풀이 양념이 되기까지를 따라간다.

연재 「비빔밥은 어디서 왔나」 ①

시월 중순, 고추밭은 끝물이다. 마지막 붉은 고추를 훑고 난 고춧대를 뽑아 밭둑에 눕힌다. 읍내 방앗간 앞에는 마른 고추 자루가 줄을 서고, 문을 열면 매운 기운이 먼저 코에 와 닿는다. 김장을 앞두고 고춧가루를 빻는 철이다.

이 붉은 가루가 빠진 밥상은 떠올리기 어렵다. 그런데 이 땅에서 고추를 처음 글로 남긴 사람은 그것을 양념이라 부르지 않았다. 독이라고 했다.

‘왜겨자’라 불린 독한 풀

이수광이 1614년에 엮은 『지봉유설』 권20의 한 대목이다. 고추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한 우리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것으로 꼽힌다.

南蠻椒有大毒。始自倭國來。故俗謂倭芥子。今往往種之。酒家利其猛烈。或和燒酒以市之。飮者多死。
남만초는 독이 크다. 처음 왜국에서 들어왔으므로 세간에서는 왜겨자라 부른다. 이제는 곳곳에서 심는다. 술집에서는 그 독한 맛을 이용해 더러 소주에 섞어 팔기도 하는데, 마신 사람이 많이 죽었다.

남쪽 오랑캐의 산초라는 뜻의 남만초, 왜에서 온 겨자라는 뜻의 왜겨자. 처음 보는 열매를 사람들은 아는 것에 빗대어 불렀다. 산초처럼 혀를 쏘고 겨자처럼 코를 찌르니 그럴 만했다.

술 이야기는 이수광이 들은 것을 적은 것이라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다만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고추가 처음에 어떤 얼굴로 받아들여졌는지는 잘 보여 준다. 반찬보다 먼저 독한 술의 재료로, 무서운 소문으로 왔다.

정말 임진왜란 때 들어왔을까

오랫동안 정설은 고추가 임진왜란 무렵 일본을 거쳐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근거는 바로 이 『지봉유설』의 ‘왜국에서 왔다’는 한 줄이다. 최남선은 『고사통』(1943)에서 고추를 담배와 함께 왜군이 들여온 것으로 적었고, 식품사학자 이성우도 같은 흐름으로 정리했다.

2011년 한국식품연구원 권대영 연구진이 『고추이야기』에서 이 설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임진왜란 이전 문헌에도 ‘고쵸’와 ‘초장’ 같은 말이 보이고, 일본 쪽에는 고추가 조선에서 건너왔다는 기록이 있으며, 우리 고추는 중남미 고추와 유전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이었다. 2017년에는 유전자 분석을 근거로 한 논문도 냈다.

반론은 우선 낱말에서 나온다. ‘고쵸’라는 말이 고추보다 먼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1489년 『구급간이방』에 ‘椒 고쵸’가, 1527년 『훈몽자회』에 ‘고쵸 쵸(椒)’가 나온다. 그러나 김종덕·고병희의 어원 연구는 앞의 것을 초피나무 열매(천초)로, 뒤의 것을 매운 열매를 두루 이르는 말로 읽는다. 음식인문학자 주영하도 ‘椒’는 산초·후추·천초에 두루 쓰인 글자라 그것만으로 고추라 단정할 수 없다고 본다. 이름이 먼저 있었다고 열매도 먼저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식물학 쪽 연구도 대체로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2023년 500개 고추 계통의 유전체를 비교한 연구는 재배 고추의 고향을 중남미로 설명했고, 2024년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연구는 멕시코를 재배화의 중심지로 짚었다. 한반도에 야생 고추가 자랐다는 증거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웃 나라에서는 중국이 1591년, 일본이 1593년 문헌에 고추로 읽히는 작물을 처음 적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2022년 수정본에서 고추가 17세기 초 이 땅에 들어왔고 그 뒤 일본과 중국 품종이 섞였다고 쓴다. 일본을 거쳤는지 중국에서 따로 왔는지는 아직 갈리지만,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사이에 아메리카에서 출발한 열매가 동아시아를 돌아 들어왔다는 쪽이 지금은 더 많은 연구의 지지를 받는다.

독에서 양념이 되기까지

들어온 고추가 부엌에 자리 잡기까지는 한 세기가 넘게 걸렸다. 1670년 무렵 경북 영양에서 쓰인 『음식디미방』에는 고추를 쓰는 조리법이 없다. 같은 17세기 후반 이서우의 『송파집』과 김창업의 시에 김치에 고추를 넣은 흔적이 처음 보인다. 세계김치연구소 박채린 연구원이 찾아낸 기록이다.

18세기에 들어서면 기록이 또렷해진다. 1720년대로 짐작되는 이시필의 『소문사설』에 순창 고추장 담그는 법이 나오고, 1766년 유중림의 『증보산림경제』에는 고추장(만초장) 담그는 법과 오이에 고춧가루와 마늘을 넣어 담그는 법이 실렸다.

그리고 19세기 중반,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의 「번초남과변증설」에 이렇게 적었다. 고추는 시골말로 고초(苦草)라 하고 임진왜란 뒤 담배와 함께 들어왔다. 고춧가루를 장에 담근 것을 초장(椒醬)이라 하는데 순창과 천안 것이 나라에 이름났다. 그 가루는 주사처럼 붉어서 소금·매실·생강·계피와 함께 하루도 없어서는 안 될 양념이 되었다.

독한 풀이라던 것이 두 세기 남짓 만에 하루도 빠질 수 없는 양념이 되었다.

그리고 1800년대 말, 상주의 부엌

그로부터 한두 세대 뒤 상주에서 『시의전서』가 쓰였다. 쿡톡이 원문을 한 글자씩 옮기며 세어 보니 이 책에는 ‘고초’가 123번, ‘고초가로(고춧가루)’가 41번, ‘실고초(실고추)’가 12번, ‘고초장’이 6번 나온다. 고추는 이미 이 부엌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이 책의 부빔밥은 고추장이 아니라 고춧가루로 비볐다. 고추장을 담가 두고도 그랬다. 다음 편은 그 이유를 따라간다 → ② 고추장이 있었는데도, 130년 전 비빔밥은 고춧가루로 비볐다

참고: 이수광 『지봉유설』 권20 훼목부, 이규경 『오주연문장전산고』 「번초남과변증설」(한국고전종합DB 원문, 번역은 쿡톡). 김종덕·고병희 「고추(番椒, 苦椒)의 語源연구」(『한국의사학회지』 12-2). 주간경향 「김치는 언제부터 빨개졌을까」(2026.9.24)·「김치는 언제부터 밥상에 올랐나」(2011.1.27).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고추」(2022 수정). 『시의전서』 횟수는 쿡톡 원문 보관본 집계. 『지봉유설』은 1614년에 엮고 1633년에 간행되었습니다. 전래 시기는 아직 논쟁 중인 주제라 각 주장의 근거를 함께 적었습니다.

연재 「비빔밥은 어디서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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