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비빔밥에는 여러 옛 이름이 포개져 있습니다. 그중 가장 멋스러운 이름이 골동밥(骨董飯) — '뼈다귀 밥'이 아니라 '이것저것 한데 섞은 밥'입니다. 혼돈반에서 골동반, 부븸밥을 거쳐 비빔밥이 되기까지, 한 그릇이 갈아입은 네 이름을 문헌으로 따라갑니다.
표제어
골동밥(骨董飯) — ‘여러 가지를 한데 섞은 밥’, 곧 비빔밥의 옛 이름.
혼돈반 → 골동반 → 부븸밥 → 비빔밥. 한 그릇이 거쳐 온 네 이름.
지금 우리가 비빔밥이라 부르는 한 그릇에는, 사실 여러 개의 옛 이름이 포개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멋스러운 이름이 골동밥, 곧 골동반(骨董飯)입니다. 글자만 보면 ‘뼈와 항아리’처럼 보이지만 뜻은 전혀 다릅니다 — 여러 가지를 어지럽게 한데 섞는다는 말입니다.
골동(骨董) — 섞는다는 말
골동은 본디 ‘여러 가지를 한데 뒤섞은 것’을 가리킵니다. 중국에는 갖은 재료를 한 솥에 넣어 끓인 국 골동갱(骨董羹)이 있었는데, 그 ‘섞음’의 뜻이 밥으로 건너와 골동반이 되었다고 봅니다. 한자 표기도 골동반(骨董飯)·골동반(汨董飯)처럼 조금씩 달리 적히곤 했습니다. 즉 골동밥은 ‘뼈다귀 밥’이 아니라, 이것저것 섞은 밥입니다.
네 개의 이름 — 혼돈반에서 비빔밥까지
한 그릇이 이름을 갈아입어 온 길이 옛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 16세기 · 혼돈반(混沌飯) — 박동량의 『기재잡기(寄齋雜記)』. ‘혼돈’은 뒤섞여 구분이 없는 상태를 이릅니다.
- 18세기 초 · 골동반(汨董飯) — 권상일의 『청대일기(淸臺日記)』(1724).
- 1800년대 말 · 부븸밥 — 『시의전서(是議全書)』에 한글 이름과 함께 조리법이 오릅니다(현존 최초의 비빔밥 조리법 기록).
- 1870년 · 골동반 = 부빔밥 — 『명물기략(名物紀略)』은 “한자로는 골동반, 부를 때는 부빔밥”이라 풀어 둡니다.
혼돈반·골동반이라는 한자 이름과 부븸밥·비빔밥이라는 우리말 이름이 오래 나란히 쓰이다가, 지금의 ‘비빔밥’ 하나로 모인 셈입니다.
시의전서의 골동반 — 처음으로 적힌 조리법
『시의전서』는 1800년대 말 경상도 상주의 반가에서 전해 오던 조리서입니다(1919년 상주군수 심환진이 필사해 며느리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여기에 비빔밥이 ‘부븸밥(골동반)’으로 올라, 그 만드는 법이 처음으로 글에 남습니다. 말로만 오가던 한 그릇이 비로소 문헌이 된 자리입니다.
비빔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옛 기록 속 비빔은 갈래가 여럿입니다. 쇠고기볶음·육회·튀각에 갖은 나물을 섞는 골동밥이 기본이라면, 닭고기와 콩나물을 얹어 비비는 닭비빔밥, 나물 위에 생선회를 얹는 비빔회밥, 잔치의 격을 갖춘 진주비빔밥까지 — ‘섞는다’는 한 동작 위에서 여러 얼굴이 퍼졌습니다.
※ 더러 골동밥의 출처로 허균의 『도문대작』(1611)을 들기도 하나, 도문대작에는 비빔밥·골동밥 기록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위의 기재잡기·청대일기·시의전서가 더 분명한 근거입니다.
골동, 섞임의 미학
골동반이라는 이름이 알려 주는 건, 비빔밥이 ‘가지런히 정리된 한 그릇’이 아니라 ‘잘 섞인 한 그릇’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로 담겨 있던 것들이 한 그릇에서 부딪치고 비벼져 새 맛이 되는 일 — 그 섞임을 옛사람은 골동(骨董)이라 불렀습니다. 이름이 촌스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빔밥이 무엇인지를 가장 정확히 적은 한 단어입니다.
곁들임 · 고문헌 속 다른 밥 이름들
- 골동밥 = 비빔밥(갖은 나물·고기를 섞어 비빈 밥)
- 맥밥(麥飯) = 보리밥(쌀과 보리를 섞어 지은 밥)
- 갱식밥 = 김칫국에 흰밥을 넣고 끓인 김칫국밥
- 돈채밥 = 돼지고기를 채썰어 쌀과 함께 지은 밥
- 금밥 = 황색 국화 잎을 끓인 물로 지은 밥
전통식품 고문헌에 오른 밥만 해도 80가지에 이릅니다. 죽·미음·응이까지 더하면 220가지가 넘어, 죽은 따로 한 사전을 이룰 만큼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밥 한 끼가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힌다 — 한 그릇을 더 푸는 마음
- 말맛 사전 · 식구(食口) — 함께 먹는 입, 가까운 사람의 다른 이름
2026.06.16 — cooktalk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