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해동죽지』는 대구 장터에서 제사 음식으로 비빈 밥을 팔았고 그 이름을 '헛졔사밥'이라 했다고 적었다. 원본 122쪽을 직접 읽고, 1970년대 안동에서 다시 상품이 된 헛제삿밥이 왜 간장으로 비비는지 따라간다.
연재 「비빔밥은 어디서 왔나」 ③
제사를 지낸 이튿날 아침이면 큰 양푼에 남은 나물을 쏟는다. 고사리, 도라지, 시금치, 무나물. 밥을 퍼 넣고 간장 한 숟갈, 참기름을 둘러 비빈다. 제사 음식에 고춧가루를 쓰지 않는 집이 많으니 그 나물에 고추장을 얹지 않는 것도 자연스럽다.
앞 편의 『시의전서』가 반가 부엌의 비빔밥이었다면, 이번 비빔밥은 제사상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백 년 전 대구에는 그것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장터의 ‘헛졔사밥’
최영년(1856~1935)이 1925년에 펴낸 『해동죽지(海東竹枝)』는 우리 풍속과 명물을 칠언절구로 읊고 짧은 설명을 붙인 책이다. 중편 「음식명물」의 122쪽에 허제반(虛祭飯) 한 항목이 있다.

東俗祭之餕餘作汨董飯大邱府內倣此調味賣於市店名曰헛졔사밥亦一奇品
우리 풍속에 제사를 지내고 남은 음식으로 골동반을 만든다. 대구부 안에서 이를 본떠 맛을 내어 시장 가게에서 팔며 이름을 ‘헛졔사밥’이라 하니, 이 또한 별난 음식이다.
한문 사이에 한글 ‘헛졔사밥’이 그대로 박혀 있다. 장터에서 실제로 불리던 이름을 한자로 옮기지 않고 받아 적은 것이다. 제사를 지내지 않았는데 제사 음식처럼 차린 밥, 그러니까 가짜 제삿밥이다.
골동반은 汨董飯으로 적었다. 『시의전서』처럼 뼈 골(骨)이 아닌 汨(골) 자로 시작한다. 바로 앞 항목인 감주(甘酒)도 ‘대구부 안의 명물’로 소개되어 있다. 대구 장터의 먹을거리 둘이 나란히 놓인 셈이다.
진짜와 똑같다는 맛
黃炙香蔬海帶臛。軟泡宛子豆蹄湯。色彩一般餕餘飯。曉鍾初下滿盤香。
누름적에 향긋한 나물, 다시마 고깃국 / 연포(두부)와 완자, 두제탕〔뜻 미상〕 / 빛깔은 제사 지낸 뒤의 밥과 꼭 같으니 / 새벽 종 막 울리자 소반 가득 향기롭다
시가 늘어놓은 것은 제사상 그대로다. 누름적, 나물, 두부, 국. 그리고 완자(宛子)와 다시마(海帶). 『시의전서』 부빔밥이 완자를 빚어 얹고 다시마 튀각을 부숴 넣고 잡탕국을 곁들였던 것을 떠올리면, 반가의 골동반과 장터의 헛제삿밥은 같은 재료 목록을 나눠 쓰고 있었다. 두제탕(豆蹄湯)이 어떤 국인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셋째 구가 재미있다. 빛깔이 제사 뒤의 밥과 ‘꼭 같다’고 했다. 진짜가 아닌 줄 알고 먹는 사람들이 진짜와 똑같다는 데서 맛을 찾았다. 새벽 종이 울릴 무렵은 제사를 마치고 음복하는 시각이다. 헛제삿밥은 그 시각의 냄새까지 팔았다.
안동으로 옮겨 간 이름
오늘 헛제삿밥으로 이름난 곳은 대구가 아니라 안동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안동과 진주, 대구에 헛제삿밥이 전해 온다고 적는다.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에는 진주에서 “30~40년 전 밤중에 제삿집 음식을 팔았다”는 기록도 있다.
어디서 시작됐는지는 여러 설로 전한다. 서원 유생들이 밤참으로 먹었다는 설, 쌀이 귀한 철에 양반들이 제사를 핑계 삼아 차려 먹었다는 설, 제사를 지낼 수 없었던 이들이 제사 음식을 흉내 냈다는 설. 어느 것도 확정되지 않았다. 남아 있는 가장 확실한 기록은 『해동죽지』의 대구 장터 한 줄이다.
안동에서 헛제삿밥이 식당 메뉴가 된 것은 1970년대 후반이다. 안동댐에 잠기는 마을의 옛집을 옮겨 지은 민속촌 식당에서 시작했는데, 해는 기록마다 조금씩 다르다. 경향신문(2002)은 1978년 조계행 씨가 처음 메뉴로 냈다고 하고, 국립경국대학교 신문(2020)은 1980년 무렵으로, 이인영·정희선(2019)은 1976~1978년 사이로 적었다. 상품이 되기 전에는 헛신위밥, 신지밥, 헛밥이라고도 불렀다.
차림은 지금도 제사상을 닮았다. 한식진흥원 자료로는 명태·건홍합·피문어로 끓인 탕, 육적·어적·두부적, 숙주·고사리·시금치 세 가지 나물이 기본이고, 안동에서는 간고등어와 상어고기 산적, 안동식혜가 함께 나온다.
그래서 간장이었다
헛제삿밥은 고추장이 아니라 간장으로 비빈다. 제수는 마늘, 파, 고춧가루 같은 향신료 없이 간장과 소금으로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집이 많다. 제사 음식으로 차린 밥이니 간도 제사의 법을 따랐을 것이다.
『시의전서』의 부빔밥과 헛제삿밥은 둘 다 고추장이 없다. 그런데 까닭이 다르다. 앞의 것은 비빔의 결을 위해 가루를 골랐고, 뒤의 것은 제사의 법을 따라 붉은 양념을 뺐다. 고추장 없는 비빔밥에도 두 갈래가 있었다.
2000년 무렵, 고추장 종지가 놓였다
그런 헛제삿밥에도 고추장이 올라왔다. 배영동 교수의 조사로는 초기 안동 헛제삿밥은 놋제기에 담아 심심하게 내고 손님이 간장으로 간을 맞추게 했는데, 2000년 무렵부터 고추장과 김치를 곁들이게 되었다. 2002년 경향신문 기사에도 손님이 청하면 고추장을 내준다는 대목이 있다. 간장으로 비비던 밥상에까지 고추장이 놓이게 된 길을 마지막 편에서 따라간다 → ④ 비빔밥에 고추장이 ‘기본’이 된 건 생각보다 최근이다
참고: 최영년 『해동죽지』(1925) 중편 「음식명물」 122쪽(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원문으로 대조, 번역은 쿡톡). 이인영·정희선 「『해동죽지』에 나타난 한국 음식문화와 사료적 가치」(『민속학연구』 44, 2019).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헛제삿밥」. 한식진흥원 헛제삿밥 자료. 경향신문 2002.12.4. 국립경국대학교 신문 2020(배영동). 뉴데일리 2015.9.27(제수 조리 원칙). 유래는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전해 오는 이야기로 적었습니다.
연재 「비빔밥은 어디서 왔나」
- ① 고추를 처음 본 조선 사람은 ‘독이 크다’고 적었다
- ② 고추장이 있었는데도, 130년 전 비빔밥은 고춧가루로 비볐다
- ③ 1925년 대구 장터에선 ‘가짜 제삿밥’을 팔았다 (지금 읽는 글)
- ④ 비빔밥에 고추장이 ‘기본’이 된 건 생각보다 최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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