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1월 7일이나 8일에 드는 절기. 겨울 동(冬) 자에는 끝과 얼음이 같이 들어 있다. 물이 먼저 얼고, 땅이 뒤따라 언다. 들일은 끝났고 부엌은 바빠진다. 『동국세시기』는 김장을 두고 집안 일 년의 큰 계획이라 적었다. 올해는 음력 구월에 드는 입동이다.
마당 수돗가 대야에 얼음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어릴 적에는 이맘때면 대야에 살얼음이 앉았던 것도 같은데, 날이 더워진 탓인지 올해는 물이 아직 그냥 물이다. 물이 먼저 얼고 땅이 뒤따라 어는 것이 입동의 순서라는데, 그 첫 순서가 아직 오지 않았다.
해마다 11월 7일이나 8일에 드는 절기, 입동(立冬)이다. 올해는 11월 7일 저녁 6시 52분에 든다. 24절기 중 열아홉 번째, 겨울이 자리를 잡는 날.
설 립(立)은 입춘 편에서 풀었다. 사람(大)이 땅(一) 위에 선 모양, 시작한다기보다 자리를 잡는다는 글자다. 겨울 동(冬)은 이번에 본다. 『설문해자』는 冬을 “네 철이 다한 것(四時盡也)”이라 풀고, 얼음(仌)과 夂를 합친 글자인데 夂는 마칠 종(終)의 옛 글자라고 적었다. 끝과 얼음이 한 글자 안에 있다. 원나라 문헌 『월령칠십이후집해』도 같은 자리를 짚는다. “입동은 시월의 절기다. 동(冬)은 마친다는 뜻이니, 만물이 거두어져 갈무리된다(冬 終也 萬物收藏也).” 봄에 선 것이 겨울에 마친다. 같은 立 자를 머리에 얹고, 입춘과 입동은 한 해의 양 끝에 선다.
옛사람은 이 보름을 세 마디로 셌다. 물이 비로소 얼고(水始冰), 땅이 비로소 얼고(地始凍), 꿩이 큰물에 들어 큰 조개가 된다(雉入大水爲蜃). 『집해』의 풀이가 꼼꼼하다. 물이 언다는 것은 “수면이 막 엉긴 것이지 아직 단단하지는 않은 것(水面初凝 未至于堅)”이고, 땅이 언다는 것은 “흙 기운이 엉겨 차가워진 것이지 아직 갈라지지는 않은 것(土氣凝寒 未至于拆)”이다. 얼음도 처음에는 얇다. 두꺼워지는 것은 두 달 뒤 대한의 일이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회남자』 천문훈을 끌어 “추분이 지나고 46일 뒤면 입동인데, 초목이 다 죽는다”는 구절을 적었다. 잎이 지는 데에도 이치가 있다. 겨울을 나는 동안 나무가 제 몸의 소모를 줄이는 일이다.
들일은 끝났다. 정학유의 『농가월령가』 시월령은 그렇게 연다. 시월은 초겨울이니 입동 소설 절기로다. 나뭇잎 떨어지고 고니 소리 높이 난다. 듣거라 아이들아 농사일 끝났구나. 그리고 바로 다음 줄에서 부엌으로 간다.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냇물에 깨끗이 씻어 소금 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조기 김치 장아찌라. 독 옆에 중두리요 바탕이 항아리라. 양지에 움막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 들에서 끝난 일이 독 속에서 다시 시작되는 셈이다. 요즘은 그 자리에 김치냉장고가 있다. 이웃 어른들 김장도 열 포기 스무 포기로 줄었다. 담그는 때는 입동이 아니라 날씨가 정한다. 일 최저기온이 0℃ 아래로, 일 평균기온이 4℃ 아래로 내려앉는 무렵이 적기라고 하는데, 그날이 오는 차례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북쪽과 산골이 먼저고 남쪽과 바닷가는 늦다. 그 뒤로는 방고래를 치고 바람벽에 매흙을 바르고 창호를 새로 바르고 쥐구멍을 막는 일, 외양간에 거적을 치고 땔나무를 쌓는 일이 이어진다. 입동의 일은 거두는 일이 아니라 막고 덮고 묻는 일이다.
김장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 후기 『동국세시기』 시월 항목은 서울 풍속을 이렇게 적었다. “순무·배추·마늘·고추·소금으로 김치를 담가 독에 넣는다. 여름 장과 겨울 김장은 곧 집안 일 년의 큰 계획이다(夏醬冬菹 卽人家一年之大計也).” 민속대백과사전도 김장은 입동을 전후한 닷새 안팎에 담근 것이 맛이 좋다고 적고, “입동이 지나면 김장도 해야 한다”는 속담을 함께 올렸다. 여기서 입추 편을 한 번 돌아보게 된다. 입추에 심은 것이 김장 무와 배추였다. 넉 달 전 밭고랑에 넣은 씨앗이 이 보름에 독으로 들어간다. 절기는 한 번에 하나씩 오지만, 부엌의 일은 넉 달씩 걸쳐 있다.
이 무렵 궁에서는 내의원이 임금에게 우유를 만들어 바치고, 기로소에서도 나이 든 신하들에게 우유를 마시게 했다. 시월 초하루부터 정월까지의 일이라고 『동국세시기』는 적는다. 마을에도 비슷한 것이 있었다. 민속대백과사전은 여러 지역 향약에 전하는 치계미(雉鷄米)를 소개한다. 입동·동지·섣달그믐에 일정한 나이 이상의 노인들을 모셔 음식을 대접하던 양로 잔치다. 이름의 세 글자는 꿩·닭·쌀, 음식 이름이 아니라 바치는 물목이다. 본래 치계미는 사또 밥상에 올릴 반찬값으로 바치던 것을 이르는 말이었는데, 마을 노인을 사또처럼 대접하자는 데서 이름을 빌려 왔다고 한다. 살림이 어려운 집은 도랑탕 잔치로 대신했다. 입동 무렵 겨울잠 자러 도랑에 숨은 미꾸라지를 파내어 추어탕을 끓여 노인들께 올리는 것이다. 그 미꾸라지 이야기는 추어죽 편에 따로 있다.
부엌 쪽으로 한 걸음 더 가면 『시의전서』가 있다. 겨울 물김치 동침이(冬沈伊). 하루 절인 통무를 썰지 않고 오이·배·유자와 함께 익혀, 먹을 때에야 썰어 꿀 탄 국물에 석류알과 잣을 띄우는 김치다. 이 이름의 한자가 재미있다. 15세기 『산가요록』의 같은 김치는 얼 동(凍) 자를 써서 凍沈이었다. 무를 실제로 얼려 담갔기 때문이다. 세계김치연구소 박채린의 표기 연구에 따르면 그 뒤 얼리지 않는 방법으로 바뀌면서 글자가 옮겨 가, 19세기 『시의전서』에서는 겨울 동(冬) 자의 冬沈伊가 되었다. 얼음에서 겨울로, 글자 하나가 삼백 년을 건너왔다. 입동의 첫 마디 “물이 비로소 언다”와 “얼려 담근 무”가 같은 자리에 놓인다. 이 김치는 책 미리보기에 전사와 풀이를 두었다.
입동에는 점도 쳤다. 입동날이 추우면 그해 겨울이 크게 춥다고 보았고, 입동 전에 보리 잎이 가위처럼 두 장 나야 보리 농사가 좋다고 믿었다. 속담 하나가 더 있다. “9월 입동 오나락이 좋고 10월 입동 늦나락이 좋다.” 음력 구월에 입동이 든 해는 추위가 빨리 와 일찍 익는 벼가 낫고, 시월에 든 해는 추위가 늦어 늦벼가 낫다는 농사 속담이다. 올해 입동은 음력 9월 28일, 구월 입동이다. 속담대로라면 서두르는 편이 좋은 해다.
다음 절기는 소설(小雪), 올해는 11월 22일이다. 비가 내리다 찬 기운에 눌려 엉겨 눈이 된다(雨下而爲寒氣所薄 故凝而爲雪). 작을 소(小)는 아직 많지 않다는 말이다. 입동에 얇게 얼었던 물이 소설에는 하늘에서 내려온다.
물이 먼저 얼고 땅이 뒤따른다. 들일이 끝나고 독이 묻힌다. 끝과 얼음이 한 글자에 들어 있는 절기. 거두는 철은 지났고, 갈무리하는 철이 섰다.
참고: 절기 시각은 한국천문연구원 24절기 입기 시각 자료, 冬의 자의는 『설문해자』, 삼후와 입동·소설의 풀이는 『월령칠십이후집해』(입동·소설 항목), 『회남자』 인용·김장·고사·치계미·도랑탕 잔치·입동보기는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입동 항목 및 속담 항목), 김장과 우유·양로 기록은 『동국세시기』 시월, 『농가월령가』 시월령은 한국국학진흥원 현대어 풀이, 동침이 표기 계보는 박채린(세계김치연구소)의 조선 조리서 김치 명칭 연구를 따랐습니다. 절기 날짜는 해마다 하루 이틀 움직입니다.
이 계절, 더 깊이
- 상강(霜降) — 서리가 내려 한 해를 마무르는 날
- 입추(立秋) — 가을은 이름부터 온다
- 어육침채 — 김치에 생선과 고기를 넣다
- 24절기 — 한 해의 마디마디 — 시리즈 길잡이
2026.11.05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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