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맞이

입춘(立春)은 왜 봄이 ‘선다’고 했을까 — 봄은 오는 게 아니라 자리를 잡는다

단이가 봄동을 안고 있다 — 입춘, 봄동·달래·냉이가 마중 나오는 절기

해마다 2월 3일이나 4일에 드는 절기. 새벽 트럭 유리는 아직 긁어야 하는데, 오후 창고 앞 바닥은 따뜻하다. 立은 사람이 땅 위에 선 모양 — 봄이 오는 게 아니라 자리를 잡는다는 말. 눈 밑에서 캔 햇나물 오신반과 문설주의 입춘첩, 그리고 봄동·달래·냉이의 첫 손.

새벽에 트럭 앞유리를 긁어야 시동을 거는 날이 아직 이어진다. 그런데 오후 세 시, 창고 앞 시멘트 바닥에 잠깐 앉으면 엉덩이가 따뜻하다. 공기는 그대로인데 볕이 먼저 달라졌다.

해마다 2월 3일이나 4일에 드는 절기, 입춘(立春)이다. 올해는 2월 4일 새벽 5시 2분에 들었다. 24절기의 첫째, 봄이 선다는 이름의 마디.

설 립(立)은 사람이 땅 위에 서 있는 모양이다. 『설문해자』는 立을 “선다는 뜻이다. 大가 一 위에 있는 꼴이다(住也 从大立一之上)”라고 풀었다. 大는 팔다리를 벌린 사람이고 一은 땅이다. 갑골문의 자형도 같은 그림이다. 그러니 입춘의 立은 봄이 선다 — 시작한다기보다 자리를 잡는다는 쪽에 가깝다. 봄 춘(春)은 조금 복잡하다. 『설문해자』의 표제자는 오늘 쓰는 春이 아니라 萅이고, 풀이는 “艸와 日을 따르며, 풀이 봄에 자라기 때문이다. 屯이 소리다(从艸从日 艸春時生也 屯聲)”이다. 풀(艸)과 해(日)에 屯을 얹은 글자인데, 屯은 뜻이 아니라 소리로 붙었다. 屯을 싹이 땅을 뚫고 나오는 모양이라고만 설명하는 글이 많지만, 자전의 셈은 그보다 신중하다. 청나라 단옥재는 屯이 초목이 처음 돋는 모양을 본떴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 글자를 회의 겸 형성으로 보았다. 소리와 뜻이 겹친 자리라는 것이다. 해와 풀. 봄이라는 글자에 그 둘이 들어 있다는 것만으로 이 절기의 이름은 충분하다.

들녘은 아직 얼어 있다. 땅속에서는 보리 뿌리가 한 호흡 깊어지고, 겨울을 난 나물의 뿌리가 새 잎을 준비한다. 농가는 이 무렵부터 한 해 농사의 셈을 시작한다. 거름을 내는 일이 먼저다. 볍씨를 담그고 못자리를 앉히는 일은 아직 두 달 뒤, 곡우의 몫이다. 요즘 들녘의 2월은 하우스 안에서 먼저 온다. 비닐 한 겹 안쪽은 벌써 다른 계절이고, 바깥 밭은 아직 입춘 전이다. 봄은 흙 위에서 먼저 오지 않고 흙 아래에서, 그리고 비닐 안에서 먼저 온다.

부엌 쪽 이야기를 해야겠다. 입춘 즈음 식탁에 가장 먼저 닿는 것이 봄동이다. 겨울 끝자락의 잎채소로, 추위 속에서 단맛이 깊어진 잎을 데쳐 무치거나 겉절이로 낸다. 곧이어 달래와 냉이의 첫 잎이 나온다. 봄동은 12월 하순부터 3월 중순까지 상자에 담겨 온다. 석 달 가까운 철인데, 입춘은 그 한가운데쯤에 든다. 첫 봄나물이라기보다 겨울을 반 넘게 지나온 나물이다. 한 끼에 봄을 한 숟갈씩 들이는 절기.

옛 풍속에는 오신반(五辛盤)이 있었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1849) 입춘조는 경기도 산골 여섯 고을 — 양근·지평·포천·가평·삭녕·연천 — 에서 움파(蔥芽)와 산갓(山芥), 승검초(辛甘菜) 같은 햇나물을 눈 밑에서 캐어 진상했고, 이를 오신반이라 하여 수라상에 올렸다고 적었다. 다섯 가지 매운 나물이라는 이름이지만 무엇을 다섯으로 세었는지는 시대와 지역마다 달랐다. 파·마늘·부추 같은 것을 꼽는 중국 쪽 기록도 있고, 『동국세시기』처럼 그해 눈 밑에서 나온 것으로 채운 예도 있다. 공통점은 하나다. 겨우내 잠긴 입맛을 매운 첫 나물로 깨웠다는 것. 지금 봄동 겉절이에 달래를 섞어 내는 상은 그 오신반의 먼 자손인 셈이다.

이날 대문과 기둥에는 입춘첩(立春帖)을 붙였다. 『동국세시기』 입춘조는 사대부 집과 여염집, 가게에 이르기까지 춘첩자(春帖子)를 기둥과 문설주에 붙였다고 전하며, 그 글귀 가운데 하나로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을 적어 두었다. 봄을 맞아 큰 복이 들고, 볕이 자라 경사가 많기를. 흰 한지에 먹으로 쓰고, 먹이 마르면 풀로 붙였다. 요즘은 문설주에 그 글귀를 붙이는 집을 보기 어렵다. 대신 농협 달력이 2월 4일 칸에 작은 글씨로 입춘이라 적어 둔다. 봄이 한 줄의 글로 시작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다음 절기는 우수(雨水), 올해는 2월 19일이다. 얼었던 물이 풀리기 시작한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봄의 첫 박자다.

봄은 한 번에 오지 않는다. 매듭을 따라, 한 마디씩 온다.

참고: 절기 시각은 한국천문연구원 24절기 입기 시각 자료, 立·萅의 자의는 『설문해자』와 단옥재 『설문해자주』, 오신반과 입춘첩은 홍석모 『동국세시기』(1849) 입춘조, 농사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입춘 항목)을 따랐습니다. 절기 날짜는 해마다 하루 이틀 움직입니다.

이 계절, 더 깊이

2026.02.04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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