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첫 마디. 아직 추위는 깊은데, 한낮의 햇살이 가늘게 따뜻해진다. 입춘첩과 오신반, 봄동·달래·냉이의 첫 손.
한 해의 첫 마디입니다.
아직 추위가 깊은데, 한낮의 햇살이 어딘가 가늘게 따뜻해집니다. 마른 가지 끝에 작은 기색이 도는 절기. 입춘(立春) — 봄이 든다는 첫 매듭입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 봄을 맞아 큰 복이 들고, 볕이 자라 경사가 많기를.
한자 — 서다, 그리고 봄
입(立)은 사람이 땅 위에 서 있는 모양입니다. 『설문해자』는 立을 두고 “선다는 뜻이다. 大가 一 위에 있는 꼴이다(住也. 从大立一之上)”라고 풀었습니다. 大는 팔다리를 벌린 사람이고, 一은 땅입니다. 갑골문의 자형도 같은 그림입니다. 그러니 입춘의 立은 ‘봄이 선다’ — 시작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리를 잡는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춘(春)은 조금 더 복잡합니다. 『설문해자』의 표제자는 오늘 쓰는 春이 아니라 萅이고, 풀이는 “艸와 日을 따르며, 풀이 봄에 자라기 때문이다. 屯이 소리다(从艸从日, 艸春時生也; 屯聲)”입니다. 곧 풀(艸)과 해(日)에 屯을 얹은 글자인데, 여기서 屯은 뜻이 아니라 소리로 붙었습니다. 흔히 屯을 ‘싹이 땅을 뚫고 나오는 모양’이라고만 설명하곤 하지만, 자전의 셈은 그보다 신중합니다. 단옥재는 屯이 초목이 처음 돋는 모양을 본떴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 글자를 “회의 겸 형성”으로 보았습니다. 소리와 뜻이 겹친 자리라는 것입니다.
해와 풀. 봄이라는 글자에 그 둘이 들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절기의 이름은 충분히 정직합니다.
들녘 — 얼음 밑에서 일어서는 것
입춘은 양력 2월 3~4일 무렵에 듭니다. 한국의 들녘은 아직 얼어 있지만, 땅속에서는 보리뿌리가 한 호흡 깊어지고, 한겨울을 지난 나물의 뿌리가 새 잎을 준비합니다. 농가에서는 이 무렵부터 한 해 농사의 셈을 시작합니다. 거름을 내는 일이 먼저인 곳이 많았습니다. 볍씨를 담그고 못자리를 앉히는 일은 아직 두 달쯤 뒤, 곡우 무렵의 몫입니다.
봄은 흙 위에서 먼저 오지 않고, 흙 아래에서 먼저 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 절기 분량의 일이 조용히 진행됩니다.
식탁 — 봄동·달래·냉이의 첫 손
입춘 즈음 식탁에 가장 먼저 닿는 것이 봄동입니다. 겨울 끝자락의 잎채소로, 단맛이 깊어진 잎을 데쳐 무치거나 겉절이로 냅니다. 곧 이어 달래와 냉이의 첫 잎이 시장에 나옵니다.
한 끼에 봄을 한 숟갈씩 들이는 절기.
옛 풍속에는 오신반(五辛盤)이 있었습니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1849) 입춘조는, 경기도 산골 여섯 고을 — 양근·지평·포천·가평·삭녕·연천 — 에서 움파(蔥芽)와 산갓(山芥), 승검초(辛甘菜) 같은 햇나물을 눈 밑에서 캐어 진상했고, 이를 오신반이라 하여 수라상에 올렸다고 적었습니다.
‘다섯 가지 매운 나물’이라는 이름이지만 무엇을 다섯으로 세었는지는 시대와 지역마다 달랐습니다. 파·마늘·부추 같은 것을 꼽는 중국 쪽 기록도 있고, 위의 『동국세시기』처럼 그해 눈 밑에서 나온 것으로 채운 예도 있습니다.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겨우내 잠긴 입맛을 매운 첫 나물로 깨웠다는 것.
옛 풍속 — 입춘첩과 첫 봄의 글귀
이날 대문과 기둥에는 입춘첩(立春帖)을 붙였습니다. 『동국세시기』 입춘조는 사대부 집과 여염집, 가게에 이르기까지 춘첩자(春帖子)를 기둥과 문설주에 붙였다고 전하며, 그 글귀 가운데 하나로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을 적어 두었습니다.
봄을 맞아 큰 복이 들고, 볕이 자라 경사가 많기를 — 한 줄의 기원이 한 해의 첫 문 위에 걸렸습니다. 흰 한지에 먹으로 쓰고, 먹이 마르면 풀로 붙였습니다. 봄이 한 줄의 글로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절기로
입춘 — 한 해의 첫 마디입니다. 아직 추위는 깊지만, 그 안에서 봄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절기는 2월 18~19일 — 우수(雨水). 얼었던 물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봄의 첫 박자입니다.
봄은 한 번에 오지 않는다. 매듭을 따라, 한 마디씩 온다.
이 글은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 입춘(立春)에 대한 짧은 안내입니다. 양력 2/3~2/4에 들며, 다음 절기는 2/18~2/19 우수입니다.
참고: 홍석모 『동국세시기』(1849) 입춘조, 『설문해자』 및 단옥재 『설문해자주』(立·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입춘」, 한국천문연구원 역서. 절기 날짜는 해마다 하루 이틀 움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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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4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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