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동, 겨울이 마지막으로 건네는 편지

봄동 한 포기 뒤에는 가을의 파종과 겨울의 눈, 그리고 느리게 기르기를 택한 누군가의 시간이 있습니다. 겨울이 마지막으로 건네는 편지를 읽어보세요.

봄동 한 포기 뒤에는 가을의 파종과 겨울의 눈, 그리고 느리게 기르기를 택한 누군가의 시간이 있습니다.

추위를 오래 견딘 잎일수록, 단맛은 안으로 깊어집니다.

2월의 어느 아침

2월 끝자락이 되면 어머니는 꼭 한 번 봄동 겉절이를 무치셨습니다. 고춧가루와 액젓, 다진 마늘과 매실청 한 숟갈. 밭에서 막 뽑아 온 봄동 한 포기를 손으로 큼직하게 찢어 양념에 가볍게 섞어 내셨습니다. 마지막엔 통깨를 조금 흩뿌리셨고요.

갓 지은 쌀밥 위에 한 점 올리고, 김 한 장에 싸서 한입 베어 물면 먼저 아삭한 소리가 나고 그 뒤로 단맛이 천천히 따라왔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꼭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겨울을 이긴 맛이지.”

봄동은 어떤 채소일까

봄동은 배추의 한 종류입니다. 보통 배추처럼 속이 단단히 차오르지 않고, 잎이 땅 가까이 퍼지며 자랍니다. 모양이 장미처럼 둥글게 퍼진다고 해서 “로제트 배추”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가을에 씨를 뿌리고 겨울을 밭에서 그대로 견딘 뒤 이듬해 초봄에 수확합니다. 눈과 서리를 맞으며 자라는 동안 잎은 얼지 않기 위해 스스로 안에 당분을 모읍니다. 그래서 추위를 오래 견딘 봄동일수록 단맛이 더 깊습니다.

언제 가장 맛있을까

봄동의 계절은 생각보다 짧습니다. 대개 1월부터 3월까지. 그중에서도 2월 끝자락에서 3월 초 사이가 가장 좋습니다. 이 시기의 잎은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씹으면 익힌 채소처럼 은은한 단맛이 올라옵니다. 겨울을 막 통과한 잎이 가진 가장 깊은 맛입니다.

3월 말쯤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잎은 조금 질겨지고 겉절이보다는 국이나 찌개에 더 잘 어울립니다. 제철이라는 말은 가장 좋은 며칠을 놓치지 않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누가, 어떻게 기를까

봄동을 기른다는 건 씨를 뿌리고 기다리는 일에 가깝습니다. 가을 바람이 서늘해질 무렵 밭에 씨를 뿌립니다. 그 뒤에는 오히려 손을 덜 대는 편이 좋다고 합니다. 너무 빨리 키우면 잎은 커지지만 맛이 얕아집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자란 것은 모양은 반듯해도 겨울을 통째로 견딘 잎 특유의 단맛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많은 농부들은 추위를 그대로 지나가게 둡니다. 겨울바람과 서리를 맞으며 천천히 자라도록.

그 시간을 견딘 잎은 손에 들어 올렸을 때 이미 다릅니다. 겉잎은 단단하고, 속잎은 노란빛이 감도는 연둣빛. 한 포기 안에 석 달의 겨울이 들어 있습니다.

봄동과 잘 어울리는 것들

봄동은 조용한 채소입니다. 강한 향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곁의 맛을 잘 받아들입니다.

된장과 만나면 국물 안으로 단맛이 천천히 풀리고, 참기름이나 들기름과 섞이면 잎의 풋내가 부드럽게 살아납니다. 갓 지은 밥과도 잘 어울리고, 으깬 두부를 곁들이면 더 담백해집니다. 달걀프라이 하나와 멸치젓 조금만 있어도 한 끼 식탁이 충분해집니다.

겉절이·된장국·전·볶음·샐러드. 같은 잎인데도 계절에 따라 여러 얼굴을 가집니다.

봄동 한 포기의 값어치

봄동 한 포기 안에는 값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가을의 파종과 겨울의 눈, 새벽마다 밭을 둘러본 사람의 시선. 빨리 키울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천천히 기르기를 택한 마음. 그리고 추위를 견디며 스스로 안으로 모아 둔 단맛.

그건 어떤 기술로도 완전히 대신할 수 없는 맛입니다.

겨울이 건네는 마지막 편지

봄동은 참 조용한 채소입니다. 향이 강하지도 않고, 모양이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땅 가까이에 붙어 천천히 잎을 펼쳐 올릴 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긴 겨울 끝에서 가장 먼저 봄을 데려오는 것도 이 잎입니다.

올해도 2월이 돌아왔습니다. 누군가는 이른 새벽 언 손을 비비며 밭에 서 있을 겁니다. 그 사람 손끝에서 뽑혀 나온 한 포기가 곧 우리 식탁으로 옵니다.

올봄, 봄동 한 포기 드셔 보세요. 그 한 잎 안에서 겨울이 마지막으로 건네는 편지를 조용히 읽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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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5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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