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건네는 봄의 첫 인사, 두릅 한 가닥의 기록

“두릅 한 가닥에, 산이 먼저 읽어낸 4월이 담겨 있었습니다.”


4월의 어느 아침

아버지는 해마다 4월이 되면 산에 오르셨습니다.

헌 등산화, 반쯤 닳은 호미, 천으로 짠 작은 망태기 하나. 그게 전부였어요.

이른 새벽,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뒷산. 아버지는 가지 끝에 돋은 연둣빛 새순을 조심스레 따 오셨습니다. 해가 중천에 뜨기 전이면 어느새 돌아와, 부엌에 바구니를 내려놓으셨어요.

끓는 물에 소금 한 꼬집, 두릅을 딱 1분. 초고추장 한 숟갈이면 그날의 저녁이 완성되었습니다.

“이게 봄이란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두릅은 어떤 나물일까

두릅은 두릅나무의 새순입니다.
겨우내 단단히 닫혀 있던 가지 끝이, 4월이 되면 스스로 열리기 시작해요. 그 안에서 연둣빛 어린잎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밉니다.

두릅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 참두릅 — 두릅나무 가지 끝의 새순. 향이 가장 진하고 결이 곱습니다.
  • 땅두릅 — 독활이라 불리는 뿌리에서 올라오는 순. 식감이 아삭하고 맛이 담백해요.
  • 개두릅 — 엄나무 순. 쌉싸름한 맛이 셋 중 가장 짙습니다.

모양도 향도 조금씩 다르지만, 한 가지는 같습니다. 모두 봄이 땅과 나무에 보내는 같은 신호라는 것.


언제 먹어야 맛있을까

두릅의 제철은 4월 초~4월 말.

너무 일찍 따면 순이 덜 여물어 향이 옅고, 너무 늦으면 잎이 벌어져 쌉싸름함이 억세집니다. 딱 그 2~3주. 짧은 창을 놓치면, 올해의 두릅은 거기서 끝이에요.

특히 곡우 전후(4월 20일 즈음)에 딴 두릅이 가장 맛있다고 합니다. 땅이 완전히 풀리고, 나무가 물을 끌어올리는 바로 그때.

그래서 옛 어른들은 말씀하셨어요.
“두릅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누가, 어떻게 따는 걸까

두릅은 기계가 딸 수 없습니다.

새순은 연약하고, 가지 끝에 아슬아슬 매달려 있으니까요. 너무 꽉 잡으면 뭉개지고, 너무 느슨하면 뿌리째 뽑힙니다.

그래서 두릅은 대부분 사람의 손끝으로 따냅니다.

해가 오르기 전 새벽. 산 중턱의 양지바른 비탈. 농부들은 가지를 한 손으로 받치고, 다른 손으로 순을 살짝 비틀어 끊어냅니다. 순을 다치지 않게, 다음 해에도 같은 자리에서 돋아날 수 있게.

한 사람이 하루 종일 산을 오르내려도, 따 모은 양은 얼마 되지 않아요. 그래서 장터에 놓인 두릅 한 묶음에는, 누군가의 굽은 등과 바지런한 새벽이 담겨 있습니다.


두릅과 어울리는 것들

두릅은 까다롭지 않아요. 다만, 한 가지만 기억해 주세요.

오래 익히지 마세요.
두릅의 향은 열에 약합니다.

가장 맛있게 즐기는 방법들:

  • 두릅 초무침 — 끓는 소금물에 딱 1분, 초고추장 한 숟갈이면 끝
  • 두릅 전 — 살짝 데친 뒤 밀가루, 계란 옷을 입혀 지지기
  • 두릅 삼겹살 쌈 — 구운 삼겹살 한 점 위에 두릅 한 잎
  • 두릅 된장국 — 불을 끄기 직전, 마지막에 한 줌
  • 두릅 장아찌 — 짧은 제철을 일 년 내내 붙잡아 두는 법

손질은 어렵지 않습니다. 밑동의 거친 부분을 살짝 깎고, 그 자리에 십자로 칼집 하나. 그거면 충분해요.


두릅 한 가닥의 값어치

장터에서 두릅 한 묶음은 5,000원~10,000원쯤 합니다.

그런데 그 한 묶음 뒤에는 — 겨우내 말라 있던 산의 가지, 4월 새벽의 찬 공기, 산비탈을 오르는 농부의 걸음, 순을 다치지 않게 조심하는 손끝, 그리고 “올해도 같은 자리에 돋았구나” 하는 안도.

숫자로는 쓸 수 없는 것들이 그 안에 있습니다.


봄이 전하는 첫 인사

두릅은 요란한 나물이 아닙니다.
강한 향도, 선명한 색도 없어요. 그저 쌉싸름하고, 조금 달고, 끝에는 산 공기 같은 향이 남을 뿐.

하지만 그 짧은 한 입이, 1년 동안 닫혀 있던 산의 문을 천천히 엽니다.

올해도 4월이 왔습니다.
누군가는 이른 새벽 망태기를 메고 산을 오르고 있을 거예요.
그 사람의 손끝에서 내려온 두릅 한 가닥이, 곧 우리 식탁 위에 놓입니다.

올봄, 두릅 한 가닥 드셔 보세요.
그 쌉싸름한 첫 맛에서, 산이 당신에게 건네는 4월의 인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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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쿡톡(cookTalk)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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