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 동지에 먹던, 붉은 부적

표제어

팥죽 — 붉은 팥을 삶아 거른 앙금에 쌀을 넣어 쑨 죽. 동지의 절식으로, 새알심(찹쌀 단자)을 넣어 끓입니다.

먹는 부적. 붉은빛으로 액을 막고, 새알심으로 나이를 세던 죽.

동짓날이면 검붉은 팥죽 한 그릇이 상에 오릅니다. 그런데 옛사람에게 이 죽은 단지 끼니가 아니었습니다. 붉은빛으로 잡귀를 쫓고, 새알심으로 식구의 나이를 세며, 한 해의 액을 막던 음식 — 말하자면 먹는 부적이었습니다.

붉은빛이 막는 것 — 팥죽이 부적이던 까닭

팥죽을 부적으로 여긴 데에는 오래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6세기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따르면, 공공씨(共工氏)의 변변치 못한 아들이 동짓날 죽어 역귀(疫鬼), 곧 전염병을 옮기는 귀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 귀신이 생전에 붉은 팥을 싫어했다는 데 착안해, 동지에 팥죽을 쑤어 그를 쫓았습니다. 붉은색은 예부터 잡귀를 물리치는 빛으로 여겨졌으니까요. 그래서 병이 돌면 팥죽을 쑤어 길에 뿌리기도 하고, 대문에 끼얹기도 했습니다. 먹기 전에 먼저 ‘쫓는’ 음식이었던 셈입니다.

동지, 작은설 — 한 해가 다시 시작되는 날

동지는 밤이 가장 길고, 그 뒤로 다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입니다. 해가 되살아나는 기점이라 하여, 옛사람은 동지를 ‘아세(亞歲)’ 곧 작은설이라 불렀습니다. ‘동지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한 해가 새로 시작되는 자리에서 액을 떨고 나이를 더하는 셈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일찍 들어와, 고려 때 이색의 『목은집』과 이제현의 『익재집』에 이미 동지 팥죽을 읊은 시가 남아 있습니다.

새알심, 나이를 세는 알

팥죽에는 찹쌀로 빚은 동그란 단자를 넣습니다. 새알만 하다 하여 새알심이라 부릅니다. 이 새알심을 식구마다 제 나이 수대로 넣어 먹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한 알 한 알이 한 살씩, 한 그릇 안에 식구의 세월이 담기는 셈입니다. 동지에는 집집마다 팥죽을 넉넉히 쑤어 사당에 올리고, 이웃과도 나누었습니다. 액을 막는 일이 곧 복을 나누는 일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가장 붉고 따뜻한 죽 한 그릇이, 액을 막고 나이를 세고 새해를 맞던 부적이었습니다. 팥죽은 그렇게, 먹기 전에 이미 한 해의 안녕을 빌던 음식이었습니다.

곁들임 · 붉은 팥이 막던 자리들

  • 동지팥죽 = 동짓날 역귀를 쫓고 한 해 액을 막던 죽.
  • 팥시루떡 = 이사·고사 때 붉은 팥고물로 액을 막던 떡.
  • 수수팥떡 = 아기 백일·돌에 나쁜 기운을 막아 주던 떡.
  • 팥 뿌리기 = 병이 돌 때 팥죽이나 팥을 길·대문에 뿌리던 벽사 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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