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가 익고, 김치가 익고, 낯이 익고, 손에 익는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둘을 동사와 형용사, 따로 된 표제어로 갈라 두었습니다.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설익은 것이 무르익기까지 시간이 든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표제어
익다 —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말을 두 표제어로 나눠 싣는다. 익다1「동사」 열매나 씨가 여물다 / 날것이 뜨거운 열을 받아 그 성질과 맛이 달라지다 / 김치·술·장 따위가 맛이 들다. 익다2「형용사」 자주 경험하여 조금도 서투르지 않다(손에 익다) / 여러 번 겪어 설지 않다(낯이 익다).
사전은 둘을 갈라 두었고, 우리말샘은 둘의 옛말을 모두 15세기의 ‘닉다’로 적는다.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고기가 익고, 김치가 익고, 과일이 익는다. 그런데 우리는 낯이 익다고도 하고, 일이 손에 익다고도 한다. 같은 소리, 같은 글자인데 사전은 이 둘을 아예 다른 표제어로 갈라 둔다 — 음식의 ‘익다’는 동사, 낯과 손의 ‘익다’는 형용사다. 그러니 음식에서 사람으로 뜻이 번졌다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우리 입은 이 둘을 오래 한 말처럼 써 왔다.
불로 익고, 시간으로 익다
음식이 익는 데에도 두 갈래가 있다. 사전도 이 둘을 따로 세워 둔다. 하나는 불로 익는 것이다. 날고기가 열을 받아 익고, 쌀이 밥이 되고, 설익은 감자가 포슬포슬해진다. 다른 하나는 시간으로 익는 것이다. 김치가 익고, 술이 익고, 장이 익는다. 앞의 것이 불의 일이라면, 뒤의 것은 기다림의 일이다. 같은 ‘익다’인데, 하나는 한순간의 열로, 하나는 여러 날의 시간으로 이뤄진다.
사람도 익는다 — 낯이 익고, 정이 들고
재미있는 건, 같은 소리가 음식 밖에서도 산다는 점이다. 자주 본 얼굴을 두고 낯이 익다고 하고, 여러 번 들은 목소리를 귀에 익다고 한다. 사전이 ‘익다2’로 따로 세운 쪽이 바로 이것이다 — 여러 번 겪어 설지 않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알기 어렵다. 우리말샘이 든 15세기 용례를 보면, 열매가 익는다는 쓰임과 수행이 몸에 익었다는 쓰임이 같은 시기의 문헌에 나란히 나타난다(『석보상절』, 1447). 순서를 세우는 대신 이렇게만 말해 두자. 처음엔 서먹하던 사이가, 자주 만나 들며 조금씩 익고 정이 든다. 김치가 하루아침에 익지 않듯, 사람 사이도 설익은 채로는 깊은 맛이 나지 않는다.
손에 익다 — 솜씨가 무르익다
일이 손에 익다는 말도 있다. 처음엔 서투르던 손놀림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어느새 매끄러워지는 것, 그것이 손에 익는 일이다. 한자 熟의 새김이 ‘익을 숙’인 것도 그래서다. 다만 이는 우리말 ‘익다’가 한자에서 왔다는 뜻이 아니라, 한자를 우리말로 새길 때 ‘익다’를 빌렸다는 뜻이다. 그 빌림 덕분에 수없이 겪어 익은 솜씨를 숙련(熟練), 충분히 자라 익은 것을 성숙(成熟), 향기와 맛이 오르게 익힌 것을 숙성(熟成)이라 읽는다. 손으로도, 사람됨으로도, 우리는 ‘익음’을 빌려 성숙과 숙련을 말해 왔다.
설익은 것은 아직 제때가 아니라는 뜻이다. 음식이든 사람이든 솜씨든, 설익은 것이 무르익기까지는 시간이 든다. 기다릴 줄 아는 일 — 어쩌면 우리말은 ‘익다’는 한 마디에 그 이치를 담아 둔 지도 모른다.
곁들임 · ‘익다’ 곁의 말들
- 익히다 — 사전도 ‘익히다1’(익다1의 사동사)과 ‘익히다2’(익다2의 사동사)로 나눠 싣는다. 불에 익히다, 그리고 글·재주를 배워 익히다.
- 익숙하다 — 어떤 일을 여러 번 하여 서투르지 않은 상태에 있다.
- 무르익다 — 과일이나 곡식 따위가 충분히 익다.
- 설익다 — 충분하지 아니하게 익다.
- 성숙(成熟)·숙성(熟成) — 한자어 쪽에서 ‘익음’을 말하는 낱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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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표준국어대사전, 우리말샘(국립국어원). 어원 정보가 없는 낱말은 단정하지 않고 풀이로 적었습니다.
2026.06.17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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