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 오이 항목의 첫마디는 왜 경고였을까 — 사백 년 전의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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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오이 항목의 첫마디는 왜 경고였을까 — 사백 년 전의 ‘외’

『동의보감』 탕액편 채부의 오이(胡瓜) 항목을 부엌의 언어로 읽습니다. 첫마디가 경고인 채소, 노각이 된 황과, 그리고 한글 한 글자 '외'. 「동의보감 식탁」 첫 편.

「동의보감 식탁」 — 사백 년 전 의서 『동의보감』 탕액편에는 약재만 실린 게 아닙니다. 밥상 위의 재료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기록을 한 가지씩, 부엌의 언어로 읽습니다. 첫 번째는 오이입니다.

오이는 차다 — 첫마디가 경고인 채소

1613년에 간행된 『동의보감』 탕액편 채부(菜部)에서 오이 항목을 펴면, 뜻밖에도 첫마디가 칭찬이 아닙니다.

원문 그대로

胡瓜 외
性寒, 味甘, 無毒. 不可多食, 動寒熱, 多瘧病.
卽今常食瓜子也. 老則色黃, 故謂之黃瓜. 《本草》

옮기면 이렇습니다. “성질이 차고 맛은 달며 독이 없다. 많이 먹지는 말 것. 곧 지금 늘 먹는 그 외이다. 늙으면 빛이 누레지므로 황과(黃瓜)라고도 부른다.”(쿡톡 옮김)

재미있는 것은 표제 옆의 한글입니다. 한문 의서인 『동의보감』은 약재 이름마다 백성이 부르는 이름을 한글로 달아 두었는데, 오이 자리에는 딱 한 글자 — 외. 선조가 허준에게 책을 명하며 “우리나라에서 나는 약재를 백성이 알기 쉽게 우리말 이름으로 적으라” 했던 그 흔적입니다. 시의전서의 외김치·외장아찌, 오이냉국의 옛말 ‘외’가 여기서도 같은 얼굴로 앉아 있습니다.

차다는 말의 뜻

“성질이 차다(性寒)”는 옛 본초학의 언어입니다. 온도계의 차가움이 아니라, 몸에 들어와 일으키는 방향이 서늘한 쪽이라는 분류지요. 옛사람들은 재료마다 이 성질과 맛(性味)을 적어 두고, 뜨거운 재료와 찬 재료를 저울질해 상을 차렸습니다. 오이가 여름의 채소인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옛 부엌은 믿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많이 먹지 말라”는 경고도 같은 논리에서 나옵니다. 찬 것을 지나치게 들이면 몸의 균형이 기운다는 것 — 효능을 부풀리기보다 절제를 먼저 적는 것이 이 책의 문체입니다. 약이 되는 것과 지나치면 해가 되는 것을 한 문장 안에 담는, 사백 년 전의 균형 감각입니다.

잎도, 뿌리도, 흰 오이도

본항 아래에는 부속 항목이 셋 딸려 있습니다. 잎(葉)과 뿌리(根)의 쓰임을 각각 한 줄씩 적고, 마지막에 월과(越瓜) — 빛이 순백색이라 채과라고도 부르는 흰 오이 — 를 붙였습니다. “월 지역에서 나며, 그 지방 사람들이 먹는다”는 짧은 소개와 함께요. 열매만 먹고 마는 것이 아니라 잎과 뿌리의 자리까지 적어 두는 것, 한 포기를 끝까지 쓰던 부엌의 기록법입니다.

오늘의 부엌

“늙으면 누레진다”는 구절에서 노각을 떠올리셨다면 맞습니다. 우리가 노각무침으로 먹는 그 누런 오이가 바로 ‘황과’가 된 외입니다. 여름 밥상이라면 이야기는 자연히 오이냉국으로 이어지지요 — 찬 성질의 채소를 찬물에 말아 내는, 옛 분류법과 꼭 맞아떨어지는 음식입니다. 시의전서의 부엌이 이 외로 김치와 장아찌를 담갔다면(외김치·외장아찌), 동의보감의 서가는 같은 외의 성질을 적었습니다. 같은 채소를 두고 부엌과 서가가 나눠 가진 두 장의 기록인 셈입니다.

효능보다 절제를 먼저 적는 것 — 사백 년 전 의서가 밥상을 대하는 태도였다.

낱말 풀이

  • 호과(胡瓜) — 오이. ‘호(胡)’는 서쪽에서 들어온 것에 붙던 글자로, 오이가 서역을 거쳐 온 채소임을 이름이 기억하고 있다.
  • 황과(黃瓜) — 누렇게 익은 오이. 오늘의 노각.
  • 월과(越瓜) — 빛이 흰 오이 종류. 채과라고도 한다.
  • 성미(性味) — 재료의 성질(차고 더움)과 맛을 함께 이르는 옛 본초학의 말.
  • 탕액편(湯液篇) — 『동의보감』에서 물·곡식·과일·채소·풀 등 재료 하나하나를 다룬 부분.

이 글은 『동의보감』(1613, 저작권 소멸) 탕액편 권2 채부의 기록을 소개하는 인문 콘텐츠입니다. 옛 문헌의 서술이며 오늘의 의학·영양 정보가 아닙니다. 원문 대조는 한의학고전DB(mediclassics.kr)에서 할 수 있으며, 번역은 쿡톡이 새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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