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7월 6일이나 7일에 드는 절기. 장맛비가 그친 틈에 창고 앞에 빈 상자를 내다 말린다. 暑는 형성자로 者는 소리일 뿐 — 뜻은 글자 그대로 덥다는 것. 햇밀과 국수, 민어고추장국, 멍석을 폈다 걷던 옛 마당까지 — 소서의 사람들은 더위를 견딘 게 아니라 틈을 살았다.
장맛비가 그쳤다. 그 틈에 창고 앞에 빈 상자를 내다 펴 말린다. 눅눅해진 골판지는 테이프가 안 붙는다. 한 시간쯤 볕을 보이면 다시 빳빳해지는데, 그 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 하늘이 또 어두워진다. 상자를 들이고, 비가 지나가면 또 낸다.
해마다 7월 6일이나 7일에 드는 절기, 소서(小暑)다. 올해는 7월 7일 오전 10시 57분에 든다. 24절기의 열한째, 작은 더위라는 이름의 마디.
더울 서(暑)는 날 일(日)에 者를 더한 형성자다. 者는 소리를 맡고, 뜻은 글자 그대로 덥다는 것이다. 작을 소(小)는 한여름의 큰 더위(大暑)에는 아직 못 미친다는 말이다. 하지에 가장 길어졌던 낮은 이제 조금씩 짧아지지만 더위는 오히려 지금부터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시기에 장마전선이 우리나라에 오래 자리 잡아 습도가 높아지고 장마철을 이루는 수가 많다고 적었다. 소서의 하루는 통째로 흐르지 않고 틈틈이 흐른다.
들녘에는 쉴 틈이 없다. 예전에는 한 절기 앞선 하지 무렵에 모내기를 끝내고, 모를 낸 스무 날 뒤인 소서 때 논매기를 했다고 백과사전은 적었다. 퇴비 장만과 논두렁 잡초 깎기가 더해진다. 비 그친 사이 풀이 한 뼘씩 오르니 김매는 손이 마를 새가 없다. 요즘 논매기는 제초제와 우렁이가 하고, 사람 손은 논두렁 예초기로 간다. 비가 들면 예초기도 쉰다. 비와 볕이 번갈아 드는 만큼 일도 쉬었다 이어지기를 되풀이한다. 같은 7월 초에도 작물마다 시간이 다르다. 참외와 수박이 단물을 채우고, 복숭아밭에서는 물복이 첫 향을 풀어 놓는다. 보리를 벤 자리에 넣은 콩과 팥은 김을 매 줄 차례고, 어린 벼는 가장 더운 볕을 받아 키를 키운다.
부엌 쪽 이야기를 해야겠다. 소서 무렵 부엌에는 갓 거둔 햇밀이 든다. 백과사전도 같은 자리를 짚는다. 소서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므로 온갖 과일과 소채가 풍성해지고 밀과 보리도 먹게 되며, 밀가루 음식은 이맘때 가장 맛이 난다고. 장마로 입맛이 가시고 더운 불 앞에 오래 서 있기 어려운 철이라 손이 가장 자주 닿는 건 국수다. 밀가루를 물에 풀어 반죽하고 한참을 치대 얇게 민다. 가늘게 썬 면이 끓는 물에 들어가면 솥에서 김이 한 번에 오른다. 삶아 건진 면을 찬물에 헹구면 손끝이 차가워지고 면발은 탱탱하게 조여든다. 고명은 텃밭에서 온다. 애호박을 송송 썰어 기름에 살짝 볶아 올리고, 가지는 쪄서 결대로 찢어 무친다. 오이는 채 썰어 얼음 띄운 냉국에 넣고, 풋고추는 된장에 찍어 곁에 둔다. 한 그릇 안에 그 계절 텃밭이 거의 다 들어앉는다. 수제비를 뜨는 날도 있다. 같은 밀가루라도 국수는 단정하고 수제비는 투박하다. 바쁜 날에는 수제비가, 손님이 드는 날에는 국수가 상에 올랐다. 요즘 밀가루는 자루가 아니라 마트 봉지로 오지만, 비 오는 날 수제비 반죽을 뚝뚝 떼는 손은 그대로다.
제철 생선은 민어였다. 백과사전은 이 무렵 소채류로는 호박, 생선류로는 민어가 제철이라 적고, 애호박을 넣어 끓인 민어고추장국의 맛을 이렇게 옮겼다. 애호박에서 절로 단물이 나고 민어는 한창 기름이 오를 때여서, 맵고도 달콤한 국물이 첫여름의 입맛을 돋운다고. 복날도 대개 이 언저리에 든다. 초복은 하지 뒤 셋째 경일이라 소서 앞뒤로 놓이는 해가 많다. 다만 19세기 세시기들이 적은 복날의 국물은 개장국이었고, 삼계탕이 그 자리에 앉은 것은 훨씬 뒷날의 일이다. 그 계보는 복달임 편에서 따로 짚었다.
옛 농가에서 소서는 일손을 총동원하던 절기였다. “소서가 넘으면 새 각시도 모심는다”, “칠월 늦모는 원님도 말에서 내려 심어 주고 간다” 같은 말이 전한다. 어느 세시기에 실렸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집안의 누구도 손을 놓을 수 없던 사정만은 분명하다. 장마에 곡식이 상할까 볕이 드는 틈마다 마당에 멍석을 펴 말리고 거두기를 되풀이했다. 창고 앞에 상자를 냈다 들이는 일이 그 멍석의 먼 후손이다.
다음 절기는 대서(大暑), 올해는 7월 23일이다. 큰 더위라는 이름 그대로 한 해 중 더위가 정점에 이르는 마디. 장마가 걷히고 무더위 속에서 벼가 한창 자란다.
소서의 사람들은 더위를 견딘 게 아니라 틈을 살았다. 비 그친 틈에 김을 매고, 볕 드는 틈에 곡식을 말리고, 불 앞에 서는 가장 짧은 틈에 한 끼를 지었다. 작은 더위라는 이름의 작다는 어쩌면 더위의 크기가 아니라 그 틈의 크기인지도 모른다.
참고: 절기 시각은 한국천문연구원 24절기 입기 시각 자료, 暑의 자의는 『설문해자』, 농사·시절식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소서 항목, 『사시찬요』·『열양세시기』 인용). 본문의 두 속담은 널리 전하나 1차 세시기에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절기 날짜는 해마다 하루 이틀 움직입니다.
이 계절, 더 깊이
- 하지(夏至) — 낮이 가장 길어지는, 한 해 볕의 정점
- 대서(大暑) — 더위가 가장 깊은 날, 가을이 가장 가까운 날
- 복달임 — 복날의 국물은 세 번 바뀌었다
- 여름은 복숭아 향으로 먼저 온다
2026.07.07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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