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 사전

당도 12.6브릭스는 단맛을 잰 숫자가 아니다 — 브릭스와 당도계의 원리

복숭아 나무에 달린 황도에 비파괴 당도계를 대고 12.6을 읽는 손

상자에 적힌 '당도 12.6브릭스'는 무엇을 잰 숫자일까. 프로이센 수학자의 이름에서 온 단위, 빛이 꺾이는 각도로 읽는 굴절계와 나무에 단 채 재는 비파괴 당도계, 그리고 단맛이 당도가 아니라 나눗셈인 이유. 영동 복숭아 밭에서 시작하는 「미식 사전」.

「미식 사전」 — 세계 음식과 조리의 말을 한 낱말씩 풀어 읽습니다. 이번 낱말은 과일 상자마다 붙는 그 숫자, 브릭스입니다.

9월 2일, 충북 영동의 밭이었다. 봉지를 벗긴 황도 한 알을 따지 않은 채, 손바닥만 한 기계를 열매에 댔다. 잠깐 뒤 화면에 12.6이 떴다. 열매는 나무에 달린 그대로였고, 기계를 뗀 자리에는 아무 자국도 남지 않았다.

그 숫자의 이름이 브릭스다. 상자에 ‘당도 12 브릭스’라고 적히면 우리는 단맛을 약속받은 것처럼 읽는다. 그런데 이 기계는 단맛을 재지 않는다.

브릭스는 이름이다

브릭스(Brix)는 사람 이름이다. 19세기 프로이센의 수학자 아돌프 브릭스는 설탕물의 농도와 비중을 맞춘 표를 다시 계산해 정리했다. 그보다 앞서 체코의 화학자 카를 발링이 비슷한 표를 만들었고, 브릭스는 그 표를 손봤다. 이름은 나중 사람에게 남았다.

정의는 단순하다. 1브릭스는 용액 100그램 안에 자당 1그램이 녹아 있는 농도다. 12.6브릭스라면 즙 100그램에 설탕 12.6그램이 든 셈이라는 뜻이다. 셈이라는 말을 붙인 이유가 있다.

기계는 빛이 꺾이는 각도를 본다

옛날 방식의 당도계는 굴절계다. 즙 한 방울을 유리판에 떨어뜨리고 빛을 통과시키면, 녹아 있는 것이 많을수록 빛이 더 크게 꺾인다. 그 각도를 설탕물 표에 대어 읽은 값이 브릭스다. 즉 기계가 실제로 재는 것은 ‘녹아 있는 것의 양’이지 설탕만이 아니다. 산도, 무기질, 아미노산도 빛을 꺾는다. 그래서 정확히는 가용성 고형물이라 부르고, 편의상 당도라 부른다.

영동 밭에서 쓴 것은 비파괴 당도계다. 즙을 내지 않는다. 근적외선을 열매에 쏘아 돌아오는 빛을 읽고, 미리 학습한 자료와 견주어 값을 추정한다. 열매를 나무에 단 채 잴 수 있고, 같은 알을 사흘 뒤 다시 잴 수 있다. 선별장의 컨베이어 위에서 알마다 숫자를 매기는 것도 이 방식이다. 대신 즙을 직접 보는 굴절계보다 오차가 있어, 한 번 잰 값보다 여러 번 잰 값을 믿는 편이 낫다.

온도도 끼어든다. 굴절은 온도에 따라 달라져서 표준은 섭씨 20도다. 한낮 밭에서 잰 값과 냉장고에서 꺼낸 즙의 값은 같은 열매라도 어긋난다. 요즘 기계는 이를 스스로 보정하지만, 보정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숫자가 ‘조건이 붙은 숫자’임을 말해 준다.

단맛은 나눗셈이다

혀가 느끼는 단맛은 당도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다. 같은 12브릭스라도 신맛이 강하면 덜 달고, 신맛이 가라앉으면 더 달다. 그래서 과일을 다루는 사람들은 당도를 산도로 나눈 값, 당산비를 함께 본다. 복숭아가 후숙하면서 달아지는 것도 이 나눗셈 때문이다. 당이 갑자기 늘어서가 아니라, 산이 줄어 분모가 작아지기 때문이다. 상자를 열었을 때 단단하고 새콤하던 알이 이틀 뒤 망고 같아지는 사이, 브릭스 숫자는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인 것은 비율이다.

한 알 안에서도 값은 고르지 않다. 대개 볕을 받은 쪽이 그늘 쪽보다 높고, 꼭지 쪽보다 아래쪽이 높다. 영동에서 나무 아래 흰 부직포를 까는 이유가 여기 있다. 땅에 닿은 빛을 위로 되돌려, 그늘 쪽 볼에도 볕을 준다. 숫자를 올리는 일이 아니라 숫자의 편차를 줄이는 일이다.

숫자를 읽는 법

그러니 상자의 12.6을 이렇게 읽으면 된다. 잰 날, 잰 알, 잰 자리의 값이다. 그 알이 볕을 얼마나 받았는지의 기록이고, 앞으로 이틀 동안 산이 얼마나 물러설지는 아직 적혀 있지 않다. 숫자가 높은 상자를 고르는 것은 틀리지 않다. 다만 숫자가 같은 두 상자 중 어느 쪽이 더 달지는, 기계가 아니라 부엌의 이틀이 정한다.

당도계는 열매가 지나온 볕의 양을 적는다. 남은 단맛은 사람의 시간이 적는다.

낱말 풀이

  • 브릭스(°Bx) — 용액 100g 중 자당 g 수로 나타낸 농도. 19세기 프로이센 수학자 아돌프 브릭스의 이름에서 왔다.
  • 가용성 고형물 — 즙에 녹아 있는 것 전부. 당이 대부분이지만 산·무기질도 포함된다. 당도계가 실제로 재는 값.
  • 굴절계 — 즙 한 방울에 빛을 통과시켜 꺾이는 각도로 농도를 읽는 기구.
  • 비파괴 당도계 — 근적외선을 쏘아 열매를 자르지 않고 당도를 추정하는 기구. 선별기와 밭에서 쓴다.
  • 당산비 — 당도를 산도로 나눈 값. 혀가 느끼는 단맛에 더 가깝다.

참고: 아돌프 브릭스(1798–1870)와 브릭스 척도의 정의는 영문 위키백과 항목을, 당도 측정 원리는 일반 식품과학 문헌을 따랐습니다. 밭에서 잰 값(12.6브릭스, 9월 2일)은 충북 영동 장미네농원의 비파괴 당도계 측정입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식품 정보이며 특정 상품의 품질을 보증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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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7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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