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 사전 · 토마토 — 200년 동안 독사과로 불린 열매

가장 이탈리아다운 재료가 사실은 아메리카에서 왔다. 안데스에서 나 멕시코에서 길든 토마토가, 유럽에서 독초로 의심받으며 식탁에 오르기까지 — 어원부터 납 식기의 누명까지. 미식 사전.

토마토 — 안데스에서 나 멕시코에서 길들고, 유럽에선 한동안 독초로 의심받은 붉은 열매.

가장 이탈리아다운 재료가 사실은 아메리카에서 왔고, 사람들이 마음 놓고 먹기까지 두 세기가 걸렸다.

파스타 위의 붉은 소스, 카프레제의 빨강. 토마토를 떠올리면 자연히 지중해가 따라옵니다. 그러나 이 붉은 열매는 지중해의 토박이가 아니라, 바다 건너 아메리카에서 온 손님입니다. 게다가 유럽이 이 열매를 마음 놓고 먹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부풀어 오르는 열매

‘토마토’라는 말은 아즈텍의 나우아틀어 ‘토마틀(tomatl)’ — ‘부풀어 오르는 열매’라는 뜻 — 에서 스페인어 ‘토마테(tomate)’를 거쳐 왔습니다. 아즈텍은 작물을 더 크고 붉게 키운 종을 따로 ‘시토마틀(xitomatl)’이라 불렀는데, 오늘의 토마토는 이쪽에 가깝습니다. 우리말로는 ‘일년감’ — 한 해만 사는 감 — 이라 했고, 한자로는 ‘남만시(南蠻枾)’, 땅에 가까이 자란다 하여 ‘땅감’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안데스에서 멕시코로

토마토의 야생 조상은 남미 안데스, 지금의 페루와 에콰도르 일대에서 자랐습니다. 그것을 작물로 길들인 것은 메소아메리카, 곧 멕시코였고, 스페인 사람들이 닿았을 때 아즈텍은 이미 토마토를 요리에 쓰고 있었습니다. 식물학적으로는 가지과에 속해, 고추·감자와 한집안입니다. 셋 다 아메리카에서 건너온 사촌인 셈입니다.

독사과로 불리던 시절

16세기에 유럽으로 건너간 토마토는, 한동안 먹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었습니다. 정원의 관상용 식물로만 길러졌습니다. 가지과에는 독을 품은 식물이 적지 않았던 탓에, 사람들은 이 낯선 붉은 열매를 ‘독사과(poison apple)’라 부르며 의심했습니다. 그 의심이 풀리기까지 무려 20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습니다.

황금 사과, 사랑의 사과

이름에는 그 시절의 눈길이 남아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처음 들어온 토마토가 노란빛이어서 ‘포모도로(pomodoro)’, 곧 ‘황금 사과’라 불렀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사랑의 사과(pomme d’amour)’라 하여 최음제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먹기는 두려워하면서도, 이름만은 곱게 붙인 셈입니다.

진짜 독은 접시에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실제로 토마토를 먹고 죽은 유럽 귀족들이 있었는데, 그 원인은 토마토가 아니라 ‘접시’였습니다. 당시 부유층이 쓰던 백랍(주석 합금) 식기에는 납이 섞여 있었고, 산이 강한 토마토가 그 납을 녹여 냈습니다. 토마토 요리를 먹고 납에 중독된 것을, 사람들은 애꿎은 토마토 탓으로 돌린 것입니다.

마침내 식탁으로

누명을 벗겨 준 것은 이탈리아 남부의 부엌이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먼저 토마토를 끓여 소스로 만들었고, 18~19세기를 지나며 파스타와 피자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한 번 식탁에 오르자, 토마토는 빠르게 세계의 붉은 맛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토마토

한국에는 1600년대에 들어온 것으로 봅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1614)에 ‘남만시’로 적혀 있고, 처음에는 역시 먹기보다 보는 관상용이었습니다. 지금은 여름 과채로, 또 짭짤한 땅에서 단맛을 끌어올린 대저 토마토처럼 산지마다 다른 얼굴로 식탁에 오릅니다.

가장 익숙한 붉은 열매가, 가장 늦게 받아들여졌습니다.

낯섦이 익숙함이 되기까지는, 늘 그만한 시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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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5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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