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는 야생에 없던 곡식이다 — 테오신트에서 사람 손으로 9천 년

미식 사전

옥수수는 야생에 없던 곡식이다 — 테오신트에서 사람 손으로 9천 년

야생 풀 테오신트에서 사람 손으로 빚어진 옥수수. 9천 년 전 멕시코에서 시작된 그 곡식과, 함께 가져가지 않으면 병이 되는 한 가지 지혜에 대하여 — 닉스타말화부터 펠라그라, 세 자매까지. 미식 사전.

옥수수 — 야생 풀 테오신트에서 사람 손으로 빚어낸, 멕시코가 길들인 곡식.

9천 년 전 멕시코에서 시작됐고, 그 곡식에 깃든 한 가지 지혜를 빼먹은 대가는 작지 않았다.

한 솥 가득 쪄 낸 옥수수에서 김이 오릅니다. 강원도의 여름이면 흔한 풍경입니다. 그런데 이 익숙한 곡식의 출발은, 생각보다 멀고 오래됐습니다. 야생의 풀 한 포기를, 사람이 수천 년에 걸쳐 곡식으로 빚어낸 것이 옥수수입니다.

사람이 빚은 곡식

옥수수의 야생 조상은 ‘테오신트(teosinte)’라는 멕시코의 풀입니다. 지금의 옥수수와는 딴판으로, 알이 몇 개 안 되고 그마저 단단한 껍질에 싸여 그냥은 먹기 어려웠습니다. 고고학과 유전학이 함께 가리키는 출발점은 멕시코 남서부 발사스강 유역, 대략 9천 년 전입니다. 이 일대의 바위그늘 유적에서 나온 8,700년 전 무렵의 녹말 알갱이가, 지금까지 확인된 가장 이른 흔적입니다.

다만 그 9천 년은 완성의 해가 아니라 시작의 해에 가깝습니다. 최근의 유전체 연구들은 옥수수가 단번에 곡식이 된 것이 아니라, 반쯤 길든 상태로 수천 년을 이동하며 다듬어졌고, 대략 6천~4천 년 전 멕시코 고지대에서 또 다른 테오신트와 다시 섞이면서 오늘의 모습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연대와 경로는 지금도 갱신되는 중입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옥수수는 사람이 손대지 않으면 스스로 씨를 퍼뜨리지도 못하는 작물이 되었다는 것 — 그만큼 사람과 함께 만들어진 곡식입니다. 마야의 창세 신화가 인간을 옥수수 반죽으로 빚었다고 전하는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겁니다.

이름의 길

옥수수를 가리키는 영어 ‘메이즈(maize)’는, 콜럼버스 일행이 카리브해 원주민에게 이름을 물어 듣고 적은 타이노어 ‘마이즈(mahiz)’에서 왔습니다. 스페인어 ‘마이스(maíz)’를 거친 이름입니다. 우리말 ‘옥수수’는 이 곡식을 가리키는 한자어 ‘옥촉서(玉蜀黍)’의 중국식 발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봅니다.

석회로 익히는 지혜

메소아메리카 사람들은 옥수수를 그냥 빻아 먹지 않았습니다. 석회나 잿물 같은 알칼리 용액에 옥수수를 삶아 불리는 ‘닉스타말화’라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옥수수에 묶여 있던 영양소 — 특히 니아신 — 이 풀려나 몸이 흡수할 수 있게 되고, 반죽이 차져 토르티야를 빚을 수 있게 됩니다. 같은 옥수수라도 이 한 단계를 거치느냐 아니냐가, 먹거리로서 전혀 다른 곡식을 만듭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과테말라 남부 해안에서 나온 가공 도구로 미루어 적어도 기원전 1500~1200년 무렵, 그러니까 삼천 년을 훌쩍 넘긴 지혜로 봅니다. 닉스타말화의 부산물이 유물에서 직접 확인된 것은 그보다 한참 뒤인 고전기 마야 유적에서였습니다.

빼먹은 지혜의 대가

이 지혜를 함께 가져가지 않은 곳에서는 탈이 났습니다. 유럽과 미국이 옥수수를 들여올 때, 제분 기술이 앞섰던 그들은 굳이 석회로 익힐 필요를 못 느꼈습니다. 그 결과, 옥수수에 크게 기댄 가난한 이들 사이에서 니아신 결핍으로 생기는 ‘펠라그라’라는 병이 번졌습니다.

이 병을 처음 기록으로 남긴 사람은 1735년 스페인의 궁정 의사 가스파르 카살이었습니다. 이후 옥수수가 주식이 된 남유럽에서 두 세기 가까이 이어졌고, 미국 남부에서는 20세기 초에 크게 번져 1906년부터 1940년 사이 300만 명 넘게 앓고 10만 명 넘게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됩니다. 원인이 니아신 결핍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1937년에 이르러서였습니다. 곡식만 가져가고, 그 곡식을 다루는 지혜는 두고 온 대가였습니다.

세 자매

옥수수는 혼자 자라지 않았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세 자매(Three Sisters)’ 농법에서, 옥수수는 콩·호박과 한자리에서 자랐습니다. 옥수수가 콩이 타고 오를 줄기를 세워 주고, 콩은 흙에 질소를 보태며, 호박은 너른 잎으로 땅을 덮어 잡초와 마름을 막습니다. 세 작물이 서로의 부족을 메우는, 오래된 공생의 지혜입니다.

세계로, 그리고 강원도

콜럼버스 이후 옥수수는 빠르게 퍼졌습니다. 한 세기가 채 지나기 전에 유럽과 지중해를 지나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밭에까지 닿았습니다. 한국에는 16세기 무렵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지만, 고려 때 원을 통해 들어왔다는 설도 있고 전래 시점을 못 박아 주는 당대의 기록은 뚜렷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전국 옥수수의 3분의 1가량이 강원도에서 납니다. 2023년을 기준으로 재배면적은 전국의 약 35%, 생산량은 약 33% — 감자·배추와 더불어 그 땅의 여름을 대표하는 작물입니다.

야생의 풀 한 포기가, 세계를 먹이는 곡식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는, 사람과 작물이 수천 년을 함께 빚어 온 시간이 있습니다.

참고: Piperno 외, 「Rio Balsas most likely region for maize domestication」(PNAS, 2009); Kistler 외(Science, 2018) 및 이후의 옥수수 유전체 연구; Santini 외, 「First archaeological identification of nixtamalized maize」(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2022); 미국 국립보건원(NIH) 펠라그라·골드버거 연구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옥수수’; 강원특별자치도 식량작물 생산실적(2023). 고고학 연대는 연구에 따라 폭이 있어 범위로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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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5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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