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전서 · 약고추장 — 고추장에 고기를 넣다

윤기 도는 고추장 한 술을 밥에 얹어 비빈다. 그런데 매운맛 뒤로, 보통 고추장에는 없는 깊은 감칠맛이 묵직하게 따라온다. 같은 붉은 장인데, 어딘가 한 겹이 더 들어 있는 맛이다.

까닭은 뜻밖이다. 약고추장에는 고추와 메주 말고도, ‘고기’가 들어간다. 말린 고기와 표고를 갈아 넣어 감칠맛을 입힌, 별미 고추장이다.

· · ·

『시의전서』의 약고추장은 공이 많이 드는 장이다. 찹쌀과 콩을 섞어 메주를 곱게 쑤어 솔잎에 켜켜이 재워 띄우고, 그 메주가루에 소금물과 고춧가루, 질게 지은 찰밥을 고루 버무린다. 여기에 식초 두드린 것과 포육(말린 고기) 가루, 표고를 맛을 보아 가며 쳐 넣는다. 되기는 묽은 죽만치 맞춘다 했으니, 떠먹기 좋게 부드러운 장이다. 흔한 밑반찬 고추장과 달리, 귀한 재료와 시간을 들여 빚는 ‘별미’였다.

이름의 ‘약(藥)’도 그래서 붙었다. 약밥·약과·약주가 그렇듯, 옛말의 ‘약’은 약재가 아니라 꿀이나 귀한 것을 넣어 정성껏 만든 음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약고추장의 ‘약’ 역시 약을 넣었다는 뜻이 아니라, 포육과 표고로 귀하게 빚은 별미라는 표지다. 평범한 장에 정성과 좋은 재료를 더해 ‘약’ 자를 얻은 셈이다.

약고추장의 ‘약’은 약재가 아니라, 정성껏 귀하게 빚었다는 표지다.


오늘의 부엌으로 옮기면 이렇다. 고추장(또는 메줏가루·고춧가루·찰밥·소금으로 띄운 장)에, 곱게 다져 볶은 소고기나 육포 가루를 넣는다. 불려 곱게 다진 표고를 더하고, 꿀과 참기름으로 윤을 내어 약한 불에 천천히 졸인다. 마지막에 식초를 아주 조금 둘러 감칠맛을 살린다. 갓 지은 밥이나 쌈, 비빔밥에 한 술 곁들이면 그대로 별미가 된다.

· · ·

고추장은 으레 상의 가장자리에 놓이는 밑반찬이다. 그런데 약고추장은 그 흔한 장을, 한 상의 중심이 될 만큼 공들여 빚은 음식이다. 같은 붉은 장이라도 누군가는 거기에 고기를 갈아 넣고 표고를 더하고 꿀로 윤을 냈다. 밥 위의 붉은 한 술이 유난히 깊거든, 그건 흔한 것을 귀하게 만들려던 손의 정성에서 온 맛이다.


낱말 풀이 〈이 글의 옛말〉

  • 약고추장 — 포육·표고를 넣어 감칠맛을 더한 별미 고추장. ‘약’은 귀하게 빚었다는 표지.
  • 포육(脯肉) — 얇게 저며 말린 고기. 갈아 넣어 장에 감칠맛을 더한다.
  • 화고(花菰)·표고 — 표고버섯. 갈거나 다져 넣어 깊은 맛을 낸다.
  • 의이(薏苡) — 율무. 율무로 쑨 묽은 죽을 빗대 장의 되기를 ‘의이만치’라 했다.
  • 메주 — 콩(여기선 찹쌀도 섞어)을 쑤어 띄운 발효 덩이. 장의 바탕이다.

이 글은 『시의전서』(是議全書, 19세기 · 저작권 소멸) 원문을 쿡톡이 한 글자씩 직접 판독·전사한 것에 근거한다. 일부 드문 옛 글자는 짐작 없이 〔?〕로 두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제철 한 줄 — 약고추장은 고추장에 고기와 표고를 더해 빚는 별미 장이다. 잘 익은 고추장에 산지의 표고를 갈아 넣어, 밥 한 술의 깊이를 더해 보시길.

이 연재는 전자책 『시의전서, 다시 차리다』(전 6권)로 엮이고 있습니다. → 미리보기 무료로 읽기

음식, 그 너머의 이야기를 편지로

스팸 없이, 매주 금요일 편지 한 통만 보냅니다.

댓글

댓글 남기기

cooktalk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