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 5일이나 6일에 드는 절기. 아침에 하우스 측창을 올리고 저녁까지 내리지 않는 첫날. 立은 사람이 땅 위에 선 모양 — 여름이 오는 게 아니라 선다. 못자리의 모는 발목까지, 산나물 매대는 닫히고 햇마늘이 문 앞에 선다. 송파의 쑥무리와 전남의 입하나무.
아침에 올린 하우스 측창을 저녁까지 내리지 않은 첫날이다. 지난주까지는 해 지기 전에 닫았다. 창고 선풍기를 꺼내 먼지를 턴다. 그늘이 짙어지고, 널어 둔 포장 상자가 한나절이면 마른다.
해마다 5월 5일이나 6일에 드는 절기, 입하(立夏)다. 올해는 5월 5일 저녁 8시 49분에 들었다. 24절기의 일곱째, 여름이 선다는 이름의 마디.
설 립(立)은 입춘 편에서 풀었다. 사람(大)이 땅(一) 위에 두 발로 선 모양, 『설문해자』는 선다(住)고 했다. 그러니 입하는 여름이 온다기보다 여름이 선다는 말이다. 24절기에서 立은 늘 계절의 첫 마디에 붙는다. 입춘·입하·입추·입동. 입하는 봄이 끝나는 순간이면서 여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 둘이 다른 마디가 아니라는 것을 24절기는 글자 하나로 적어 두었다.
들녘에서는 보리가 황으로, 잎은 녹으로 간다. 춘분에서 청명을 거쳐 곡우에 이르는 한 달 사이 누렇던 보리잎이 푸름으로 일어서고 어린 이삭이 볕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하. 곡우에 마련한 못자리도 자리를 잡아 농사일이 분망해지는 때라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적었다. 모내기는 아직이다. 못자리의 모가 발목까지 자라 옮겨 심을 날을 기다린다. 자라는 것이 농작물만은 아니다. 입하가 되면 해충도 많아지고 잡초까지 자라서 이것들을 없애는 일도 많아진다고 같은 사전이 덧붙인다. 신록을 재촉하는 절기라는 말에는 그 손이 빠져 있지 않다. 요즘은 그 손이 예초기다. 마을에 예초기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하는 때가 입하 무렵이다.
부엌 쪽 이야기를 해야겠다. 산은 입하 무렵에 산나물의 한 시즌을 닫는다. 4월 끝자락에 절정이던 눈개승마와 명이나물이 잎이 두꺼워지고 줄기가 굳어 식용에서 멀어진다. 고도와 지역에 따라 보름 남짓 차이가 나서 강원 산간에서는 5월 말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그 자리에 햇마늘이 선다. 의성·태안의 농가에서는 5월 하순부터 수확이 시작된다. 한 통씩 흙에서 들어 올려 줄기를 자르고 흙을 털어 같은 날 안에 보낸다. 햇마늘이 햇마늘인 까닭은 시간의 짧음에 있다. 입하의 매대는 그래서 닫히는 것과 열리는 것이 겹치는 매대다. 산나물 상자가 마지막으로 오고, 햇마늘 상자가 처음 온다.
입하의 절식으로 기록에 남은 것은 쑥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송파 지역에서 입하 무렵 쑥무리를 절식으로 마련했다고 적었다. 쑥무리는 쑥버무리, 어린 쑥에 쌀가루를 버무려 찐 떡이다. 봄나물로 먹던 쑥이 마지막으로 연할 때 떡으로 한 번 더 붙잡는 셈이다.
이 무렵 흰 꽃을 뭉텅뭉텅 다는 나무가 이팝나무다. 전라남도에서는 입하 무렵에 꽃이 핀다 하여 입하나무(立夏木)라 불렀고, 못자리를 시작할 때 꽃이 한꺼번에 활짝 피면 풍년, 잘 피지 않으면 흉년, 시름시름 피면 가뭄이 심하다고 여겼다. 이름의 유래로는 흰 꽃이 쌀밥, 곧 이밥처럼 보인다는 설도 나란히 전한다. 정학유의 『농가월령가』 사월령은 이 계절을 이렇게 연다. 사월이라 맹하되니 입하 소만 절기로다. 보리 이삭 패어나니 꾀꼬리 소리 난다. 농사도 한창이요 누에도 방장이라. 들일과 누에치기가 한 달 안에 겹친다. 모란은 흔히 입하의 꽃으로 불리지만, 옛 이십사번화신풍에서 모란이 놓인 자리는 한 절기 앞선 곡우다. 화신풍은 소한에서 곡우까지 스물네 번의 꽃소식으로 끝나고, 입하부터는 꽃이 아니라 잎이 계절을 센다.
다음 절기는 소만(小滿), 올해는 5월 21일이다. 만물이 가득 차기 시작한다. 보리는 더 익고, 못자리의 모는 본 논으로 옮겨지고, 매대에는 햇마늘이 한 칸을 차지한다.
측창을 내리지 않은 저녁에 여름이 섰다. 서는 것은 소리가 없다. 다음 날 아침에야 섰다는 걸 안다.
참고: 절기 시각은 한국천문연구원 24절기 입기 시각 자료, 立의 자의는 『설문해자』, 농사·쑥무리·입하나무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입하·이팝나무 항목), 『농가월령가』 사월령은 한국국학진흥원 현대어 풀이, 화신풍은 이십사번화신풍. 절기 날짜는 해마다 하루 이틀 움직입니다.
이 계절, 더 깊이
- 곡우(穀雨) — 곡식을 자라게 하는 봄비, 새 차의 시작
- 소만(小滿) — 가득 차되 아직 차지 않은 5월의 둘째 마디
- 매운맛이 덜한 얼굴 — 5월의 햇마늘
- 눈개승마 — 4월 끝자락의 한 잎
2026.05.07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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