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는 한 집의 먹는 입이다. 그런데 食口는 한문에도 있던 말이고, 그쪽 뜻은 오히려 ‘먹여야 할 입’에 가깝다. 같은 두 글자가 한국어에서 걸어간 다른 길을, 식솔·동거자와의 차이와 함께 따라가 본다.
표제어
식구(食口) — 한 집에서 끼니를 함께하는 사람. 더 넓게는, 한 끼를 나눠 잠시 가까워진 사람.
食 먹다 · 口 입 — 사람을 ‘먹는 입’의 수로 세는 말.
한국어는 가까운 사람을 ‘명’이 아니라 ‘입’으로 세기도 한다. 식구(食口) — 한 집의 먹는 입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 식탁에 둘러앉은 입의 수다.
한자의 해부 — 食 + 口
식(食)은 먹다의 식, 구(口)는 입의 구. 두 글자를 합치면 ‘먹는 입’이다. 여기서 口는 단순한 신체 부위가 아니라 사람의 수를 세는 글자로 쓰였다 — 인구(人口)·가구(家口)의 그 口다. 그러니 식구는 사람을 입의 단위로 센다. 어른 한 명이 한 식구, 아이 한 명도 한 식구, 잠시 머무는 손님 한 명도 한 식구. 표준국어대사전이 적은 첫 뜻도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다. 가족을 ‘집’이나 ‘피’로 정의하지 않고, ‘함께 먹는다’는 한 행위로 정의한 셈이다.
식구·식솔·동거자 — 한 끗 차이
비슷해 보이는 말들이 실은 다른 자리를 가리킨다.
- 식구(食口) — 함께 먹는 입. 사전 뜻풀이 그대로, 한집에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 식솔(食率) — 사전은 ‘한집안에 딸린 구성원’이라 적고, 가속(家屬)·가솔(家率)을 비슷한말로 단다. 딸린다는 말과 나란히 놓이는 자리라서, 거느려 먹이는 쪽의 무게가 읽힌다.
- 동거자(同居者) — ‘한집에서 같이 사는 사람’. ‘함께 먹는다’는 결이 빠지고, 거주의 사실만 남은 말.
한 글자, 한 단어 차이로 한국어는 ‘같이 먹는 사이 / 딸려 먹는 사이 / 그저 같이 사는 사이’를 갈라 둔다. 식구는 그 가운데, 가장 수평적이고 가장 따뜻한 자리에 놓인다.
한자권 속의 식구
먼저 밝혀 둘 것이 있다. 食口는 한국에서 만든 말이 아니다. 한문에도 있던 말이고, 한자 사전은 이를 ‘생산하지 않으면서 부양해야 할 식솔’로 푼다. 당나라 한유(韓愈)의 시구가 그 예로 실린다 — “秩卑俸薄食口衆”(벼슬은 낮고 녹은 박한데 먹일 입은 많다). 곧 한문 쪽 食口는 ‘먹여 살려야 할 입’ 쪽에 가깝다. 우리로 치면 오히려 식솔에 가까운 자리다.
오늘날 중국어는 이 말을 일상어로 잘 쓰지 않고 가인(家人)·가구(家口)·가권(家眷)을 쓴다. 家口는 『열자』와 『남사』에 이미 보이는 오랜 말이고, 家眷은 흔히 처자식을 가리킨다. 일본어도 食口를 일반어로 쓰지 않고 가족(家族)을 쓴다. 영어 family의 뿌리는 조금 더 뜻밖이다. 라틴어 familia는 본디 ‘한 집안의 하인들’을 뭉뚱그린 말이고, 그 뿌리인 famulus가 바로 ‘하인’이다. 부모와 자식을 이르는 데는 오히려 domus를 썼다.
그러니 ‘식구’가 한국어만의 발명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만 같은 두 글자를 붙들고 걸어간 길이 다르다. 한문에서 ‘먹여야 할 입’이던 말이, 한국어에서는 ‘한집에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곧 가족 그 자체의 이름으로 남았다. 발명이 아니라 선택이다 — 사람을 부르는 여러 말 가운데 식탁 쪽 말을 끝까지 놓지 않은 쪽이 한국어였다.
식구가 늘다 · 식구가 줄다
‘식구가 늘다’는 단순한 인구의 증가가 아니다. 같이 먹는 사람이 한 명 더 생겼다는 뜻이다. ‘식구가 줄다’도 같다. 한 사람이 떠난 자리를, 한국어는 ‘식탁의 빈자리’로 센다. ‘한 식구처럼 지낸다’는 말도 있다 — 같은 집에 살지 않아도, 자주 함께 먹으면 그만큼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사전이 식구의 두 번째 뜻으로 ‘한 조직에 속하여 함께 일하는 사람’을 올려 둔 것도 같은 결이다. 이 말이 품은 등식이, 관용 표현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인다.
한 행위의 이름
그래서 식구는 한 단어라기보다, 한 행위의 이름에 가깝다. 한 끼가 끝날 때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한 자리만큼 좁아진다. 같은 상에 숟가락을 하나 더 놓는 일 — 그 작은 동작 안에, 이 말의 뜻이 거의 다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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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표준국어대사전, 우리말샘(국립국어원). 한자 사전 漢典의 食口·家口·家眷 항목, Online Etymology Dictionary의 family 항목. 어원 정보가 없는 낱말은 단정하지 않고 풀이로 적었습니다.
2026.06.16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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