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제어
삭히다 — 김치나 젓갈 따위의 음식물을 발효시켜 맛이 들게 하다. ‘삭다’의 사동사.(표준국어대사전)
분을 ‘삭이다’와 한 뿌리에서 갈라진 말. 음식은 삭히고, 마음은 삭인다.
잘 삭은 홍어 한 점, 곰삭은 젓갈 한 술에는 시간이 들어 있다. 갓 담갔을 때는 비리고 짜기만 하던 것이, 며칠 혹은 몇 달을 지나 전혀 다른 맛으로 익는다. 우리는 그 일을 ‘삭힌다’고 말한다. 끓이거나 굽는 것과 달리, 삭히는 일에는 불이 아니라 기다림이 든다.
삭다 — 한 뿌리에서 갈라진 두 말
‘삭히다’와 ‘삭이다’는 모두 ‘삭다’라는 한 동사에서 나왔다. 짐작이 아니라 사전이 그렇게 적어 두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삭히다’를 ‘김치나 젓갈 따위의 음식물을 발효시켜 맛이 들게 하다. 삭다의 사동사’로, ‘삭이다’를 ‘긴장이나 화를 풀어 마음을 가라앉히다. 삭다의 사동사’로 풀이한다.
그 ‘삭다’는 여러 갈래로 쓰인다. 김치나 젓갈이 발효되어 맛이 드는 것도 삭는 것이고, 긴장이나 화가 풀려 마음이 가라앉는 것도 삭는 것이다. 물건이 오래되어 본바탕이 변하는 것도, 먹은 음식이 소화되는 것도, 기침이나 가래가 잠잠해지는 것도 사전은 모두 ‘삭다’로 적는다. 같은 말이 항아리의 일에도, 몸과 마음의 일에도 쓰인 셈이다. 그 ‘삭다’를 ‘~하게 만들다’로 바꾼 사동사가 둘로 갈라지면서, ‘삭히다’와 ‘삭이다’가 되었다.
삭히다 vs 삭이다 — 한 끗의 맞춤법
자주 헷갈리지만 가르는 기준은 분명하다. 음식을 발효시킬 때는 ‘삭히다’, 감정을 가라앉힐 때는 ‘삭이다’를 쓴다. 홍어를 삭히고, 젓갈을 삭히고, 식해를 삭힌다. 반대로 화를 삭이고, 분을 삭이고, 기침이나 가래를 삭인다. 기침과 가래 쪽도 사전이 ‘삭이다’로 따로 세워 둔 뜻이다. ‘가자미식해는 가자미를 삭혀 만든다’는 맞고, ‘아무리 화를 삭이려 해도 가라앉지 않았다’가 맞다. 한 글자 차이지만, 하나는 항아리의 일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의 일이다.
곰삭다 — 오래되어 더 깊어지는 것
삭는 데도 정도가 있다. 젓갈이 오래되어 푹 삭은 것을 ‘곰삭다’라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곰삭다를 ‘젓갈 따위가 오래되어서 푹 삭다’, 그리고 ‘옷 따위가 오래되어서 올이 삭고 질이 약해지다’로 풀이한다. 그래서 곰삭은 젓갈은 비린내가 가시고 깊은 감칠맛이 돈다.
사람들은 이 말을 음식 밖으로도 끌어다 쓴다. 그리고 그 쓰임은 사전에도 올라 있다 — 곰삭다에는 ‘두 사람의 사이가 스스럼없이 가까워지다’는 뜻이 따로 세워져 있다. 오래되어 깊고 그윽해진 정이나 말투를 두고 ‘곰삭았다’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억지로 끌어다 붙인 비유가 아니라 사전이 이미 알고 있는 쓰임이다. 시간이 빚어낸 깊이를, 우리는 삭는 일에 빗대어 말해 온 것이다.
삭힘의 미학 — 기다림이 만든 맛
삭힌다는 건 분해를 기다리는 일이다. 단백질이 미생물에 의해 천천히 풀어지면서, 처음엔 없던 감칠맛이 생겨난다. 홍어가 코를 찌르면서도 끝내 깊은 맛으로 남고, 젓갈 한 술이 국과 김치의 맛을 받치는 이유다. 끓여서 곧장 얻는 맛이 아니라, 시간에 맡겨야 비로소 오는 맛 — 우리 발효의 밥상은 그 기다림 위에 서 있다.
곁들임 · 삭혀서 깊어지는 우리 음식
- 홍어 — 삭힐수록 코를 찌르되, 끝맛은 더 깊어지는 발효 생선.
- 가자미식해 — 가자미를 좁쌀·고춧가루와 함께 삭힌 함경도 젓갈.
- 젓갈 — 새우젓·멸치젓처럼 오래 삭힐수록 감칠맛이 짙어지는 밑반찬이자 양념.
- 김치 — 익고 삭으며 신맛과 감칠맛이 함께 깊어지는 발효의 대표.
음식은 삭혀서 깊어지고, 마음은 삭여서 가라앉는다. 같은 ‘삭다’에서 갈라진 두 말이,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한다 — 좋은 것은 서둘러 오지 않는다는 것. 항아리 속의 시간도, 마음속의 시간도, 충분히 지나야 비로소 맛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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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표준국어대사전, 우리말샘(국립국어원). 어원 정보가 없는 낱말은 단정하지 않고 풀이로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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