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국물에 국수가 잠겨 있다. 얼음이 서걱이고, 위엔 오이채와 통깨 몇 알. 한 술 떠 마시면 콩의 고소함이 묵직하게 차오른다. 여름이면 으레 찾는, 차고 흰 한 그릇이다.
콩국수 앞에서 우리는 늘 다툰다. 설탕이냐, 소금이냐. 그런데 1800년대 말엽에 쓰인 『시의전서』는 한 글자로 적어 둔다 —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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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이렇다. ‘콩을 담가 불려 데쳐, 가는 체에 밭쳐 소금 타 간을 맞추고, 밀국수를 만다.’ 눈에 띄는 건 ‘체에 밭친다’는 한 마디다. 콩을 곱게 갈아 고운 체에 한 번 더 거르면, 국물이 매끄럽고 콩비린내가 가라앉는다. 차게 식힌 그 흰 국물에 국수를 마는 것이다.
콩국은 여름의 단백질이었다. 고기가 귀하고 더위에 입맛을 잃는 철, 콩을 갈아 마시는 것으로 기운을 채웠다. 간을 소금으로 잡은 까닭도 분명하다. 단맛은 콩의 구수함을 덮지만, 소금은 그 고소함을 끌어올린다. 설탕을 넣는 방식은 뒷날, 또 지역마다 갈린 입맛이다. 끓여 우린 국물이 아니라 삶아 갈아 차게 식힌 국물 — 콩국수는 끓이지 않는 여름 국물의 또 한 갈래다.
원문의 콩국은 한 가지로 끝나지 않는다. 밀국수를 마는가 하면, 녹말국수를 눌러 붉은 오미자물(오미자를 찬물에 우린 붉은 물)에 말기도 했다. 흰 콩국과 붉은 오미자물, 차게 마는 두 갈래 국수가 한 자리에 적혀 있다. 곁에는 녹말물을 끓는 물에 둘러 익혀 묵처럼 썬 ‘창면(暢麵)’ 만드는 법까지 딸려 있다. 여름 국수 한 대접에, 옛 부엌의 솜씨가 겹겹이다.
콩국수의 간은, 본디 소금이었다.
오늘의 부엌으로 옮기면 이렇다. 흰콩(메주콩)을 하룻밤 불려 삶되, 너무 오래 삶지 말고(비린내가 난다) 한소끔 끓으면 건진다. 껍질을 비벼 헹군 뒤 물을 조금 붓고 곱게 갈아, 고운 체에 한 번 밭친다. 소금으로만 간을 맞추고 차게 둔다. 삶아 헹군 국수를 말고 오이채와 통깨를 얹으면 된다. 더 곱게 가리려면 콩을 갈 때 얼음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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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나는 법은 더위를 식히는 것만이 아니라, 빠져나간 기운을 채우는 일이기도 했다. 콩 한 줌을 갈아 흰 국물로 마시던 마음이 거기 있다. 설탕이냐 소금이냐를 다투기 전에, 옛 부엌은 콩 그 자체의 고소함을 믿었다. 올여름 흰 국물 한 술에 콩의 맛이 묵직하다면, 그건 간을 덜어 낸 자리에서 온다.
낱말 풀이 〈이 글의 옛말〉
- 콩국 — 콩을 삶아 갈아 체에 밭친 흰 국물. 국수를 말면 콩국수.
- 화청(和清) — 꿀을 타서 단맛을 들이는 일. 오미자물에 화청해 국수를 말기도 했다.
- 창면(暢麵) — 녹말물을 끓는 물에 익혀 묵처럼 썬 국수. 오미자물에 말아 먹는 여름 국수.
- 오미자물 — 오미자를 찬물에 우린 붉은 물. 콩국·창면을 붉게 물들였다. 원문 표기는 ‘오미자국’.
- 웃기 — 음식 위에 얹는 고명.
이 글은 『시의전서』 하편 「콩국」 항목 원문(상·하편 전사본 교차)에 근거한다. ‘소금 타 간 맞춤’, 녹말국수·오미자물·창면 등은 원문에 적힌 대로 옮겼고, 미세한 탈자는 짐작 없이 비웠다. 설탕·소금의 현대적 차이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갈리는 입맛으로, 원문 사실(소금 간)과 구분해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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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철 한 줄 — 콩국수는 여름 콩과 국수, 오이채로 짓는다. 산지의 햇콩으로 흰 국물을 곱게 갈아 한 그릇 말아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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