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 — 여름엔 곡식을 마셨다

더운 날, 뽀얀 가루 한 술을 찬물에 풀어 휘젓는다. 곡식 냄새가 구수하게 올라오고, 숟가락 없이도 한 사발이 그대로 한 끼가 된다. 미숫가루는 그렇게, 마시는 밥이다.

우리는 끼니를 ‘씹는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옛 여름에는 곡식을 ‘마셨다’. 미수가 바로 그것이다.

밥을 가루로 갈무리하다

『시의전서』는 미수 가루 만드는 법을 또렷이 적는다. 찹쌀로 지은 지에밥(고두밥)을 쪄서 고루고루 말리고, 절구에 빻아 볶은 뒤, 맷돌에 갈아 고운 체에 친다. 그렇게 둔 가루를 물에 타 마시며, 더러 송홧가루를 함께 타 쓰기도 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밥을 한 번 더 익혀 말려 가루로 갈무리해 두는 일이다.

지혜는 그 ‘말려 둠’에 있다. 쪄서 익힌 곡식을 바싹 말리면 쉬이 상하지 않고, 물만 타면 곧바로 먹을 수 있다. 불을 피우기 어려운 길 위에서도, 입맛이 달아나는 더운 철에도 더없이 합당한 음식이다. 볶는 과정이 고소함을 끌어올리고 보존성도 더한다. 냉장고도 불도 없이, 가루 한 줌으로 한 끼를 들고 다니던 셈이다.

한 가지 곡식이 아니었다

미수는 찹쌀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보리와 콩, 여러 곡식을 같은 방식으로 쪄 말려 볶아 갈았다. 송홧가루(솔의 꽃가루)를 더하면 노란 빛과 은은한 향이 돌고, 꿀이나 설탕을 타면 단맛이 더해진다. 같은 ‘마시는 곡식’이라도 무엇을 갈았느냐에 따라 빛도 맛도 달라졌다.

여름엔, 밥을 마셨다.


오늘의 부엌으로 옮기면 이렇다. 찹쌀(또는 현미·보리)을 씻어 쪄서 고두밥을 짓고 바싹 말린다. 마른 밥을 약한 불에 노릇하게 볶아 곱게 빻고 고운 체에 친다. 찬물이나 찬 우유에 두세 술 타서 꿀로 단맛을 더하고 얼음을 띄우면 된다. 송홧가루를 조금 섞으면 빛과 향이 산다. 가루는 밀폐해 서늘한 곳에 두고 여름내 쓴다.

· · ·

여름을 나는 법에는 시원함만이 아니라 ‘덜어 두는 손’도 있었다. 한가할 때 곡식을 쪄 말려 갈아 두면, 가장 바쁘고 더운 날 물 한 사발로 한 끼가 되었다. 미숫가루 한 술이 물에 뽀얗게 풀리거든, 그건 누군가 미리 갈아 둔 밥이 다시 한 끼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낱말 풀이 〈이 글의 옛말〉

  • 미수 — 곡식을 쪄 말려 볶아 갈아 둔 가루. 물에 타 마신다. 오늘의 미숫가루.
  • 밀수 — 미숫가루를 푼 물. 미수를 ‘밀수에 탄다’고 했다.
  • 지에밥 — 물기 없이 된 고두밥. 쪄서 지은 밥.
  • 송홧가루 — 소나무의 노란 꽃가루. 향과 빛을 더해 함께 탔다.

이 글은 『시의전서』 하편 「미수」 항목 원문(상·하편 전사본 교차)에 근거한다. 찹쌀 지에밥을 쪄 말려 빻아 볶아 갈아 고운 체에 친다는 제법과 송홧가루를 타는 것은 원문에 적힌 대로 옮겼고, 미세한 탈자는 짐작 없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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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철 한 줄 — 미수는 햇곡식을 쪄 말려 볶아 갈아 짓는 여름 음료다. 산지의 찹쌀·보리로 곱게 갈아 두면, 더운 날 물 한 사발이 한 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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