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한가운데 놋그릇이 놓이고, 가운데 굴뚝에서 숯불이 피어오른다. 둘레에는 고기와 생선, 채소와 지단이 색을 맞춰 켜켜이 둘러 담겼다. 끓는 국물을 떠 가며 두런두런 먹는 — 신선로(神仙爐), 곧 열구자탕이다.
이름부터 뜻이 담겼다. 열구자(悅口子) — ‘입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시의전서』가 적은 이 한 그릇은, 옛 잔칫상의 가장 화려한 정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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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그릇 쓰는 법부터 적는다. ‘신선로에 담고 화통에 불을 피워 데우며 수시로 떠 먹는다.’ 화통(火筒)은 신선로 가운데의 굴뚝으로, 거기 숯불을 피워 상 위에서 국을 끓이며 먹는다. 익힌 음식을 차게 식기 전에, 끝까지 따뜻하게 먹으려는 그릇이다. 만두를 작게 빚어 넣기도 한다고 했다.
들어가는 것은 곧 한 상의 목록이다. 진계(묵은 닭)와 전복, 양·천엽·부화(허파)·곤자소니·골 같은 쇠고기 부속, 제육(돼지고기)과 황육(쇠고기), 무·도라지·파·표고. 이들을 ‘다 썰어 방정히 저며’ 번철에 기름 둘러 지진다. 미나리는 계란 옷을 입혀 지지고, 나머지는 그대로 지진다. 한 가지를 끓이는 탕이 아니라, 수십 가지를 따로 지져 모으는 탕이다.
담는 데도 격식이 있다. 지진 재료를 신선로 그릇에 켜켜이 둘러 담고, 황백 전유어를 색 곱게 지져 썰어 얹는다. 채소는 양념해 완자로 빚어 넣고, 계란은 흰자·노른자를 나눠 지단을 부쳐 곱게 썰어 위에 흩는다. 그 위에 잣·은행·호도를 흩어 마무리한다. 국물은 양지머리를 고아 낸 맑은 장국에 고기 볶은 즙을 합해 진하게 만들고, 화통에 숯불을 피워 데우며 먹을 때 국수를 서너 치씩 끊어 넣거나 흰떡·채소를 더해도 좋다 했다.
한 가지를 끓이는 탕이 아니라, 수십 가지를 따로 지져 색 맞춰 둘러 담고 — 상 위에서 끓이며 먹는 그릇.
오늘의 부엌으로 옮기면 골격은 이렇다. 양지·사태로 맑은 육수를 넉넉히 내고, 쇠고기·생선전·채소를 각각 부쳐 색을 맞춰 썬다. 신선로 틀에 양념한 고기를 깔고 그 위에 전·채소·지단을 색 맞춰 둘러 담은 뒤, 잣·은행·호도를 얹고 육수를 부어 가운데 숯(또는 고체연료)으로 끓이며 먹는다. 부속이나 전복이 부담스러우면 쇠고기·흰살생선·표고·미나리만으로도 골격은 산다. 분량은 원문에 없으니 맛을 보아 가며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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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구자탕은 한 사람의 그릇이 아니라 여럿의 그릇이다. 가운데 불을 두고 둘러앉아, 식지 않는 국물을 함께 떠먹는다. 갖은 재료를 따로 지져 색을 맞춰 담은 수고도, 결국 ‘함께 오래 따뜻하게 먹자’는 마음에서 나온다. 입을 즐겁게 한다는 이름은, 어쩌면 혀보다 그 자리를 두고 한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낱말 풀이 〈이 글의 옛말〉
- 열구자탕(悅口子湯) — ‘입을 즐겁게 하는 탕’. 신선로 그릇에 갖은 재료를 담아 끓이는 탕.
- 신선로(神仙爐) — 가운데 화통(굴뚝)이 달려 숯불로 상에서 끓이는 놋그릇. 그릇 이름이 음식 이름이 되었다.
- 화통(火筒) — 신선로 가운데의 굴뚝. 여기에 숯불을 피운다.
- 진계(陳鷄) — 묵은 닭. 국물을 진하게 낸다.
- 곤자소니 — 소의 창자 끝 부분. 양·천엽·부화(허파)와 함께 쓴 쇠고기 부속.
- 전유어(煎油魚) — 기름에 지진 전. 여기서는 황백으로 색을 낸 전.
근거: 『시의전서』(是議全書, 1800년대 말엽 · 저작권 소멸) 「열구자탕」 항목. 원문은 쿡톡이 한 글자씩 직접 판독·전사한 것에 근거한다. 일부 드문 옛 글자는 짐작 없이 〔?〕로 두었다.
◆ 제철 한 줄 — 열구자탕은 둘러앉아 불을 가운데 두고 먹는 잔치 탕이다. 추운 철, 식지 않는 한 그릇으로 여럿이 오래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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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재는 전자책 『시의전서, 다시 차리다』(전 6권)로 엮이고 있습니다. → 미리보기 무료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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