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 사전

포도 껍질의 흰 가루, 농약이 아니라 열매가 만든 밀랍이었다 — 브룸

흰 가루가 낌 포도송이, 한 알만 닦아 광이 난다

상자에서 꺼낸 포도는 조금 흐리다. 농약으로 오해받는 그 흰 가루는 열매가 스스로 만든 밀랍, 브룸. 물을 막고 곰팡이를 막고 효모를 살게 하는 얇은 막. 제일 예쁜 상태와 제일 오래가는 상태가 다른 이유. 「미식 사전」.

「미식 사전」 — 세계 음식과 조리의 말을 한 낱말씩 풀어 읽습니다. 이번 낱말은 포도 껍질의 흰 가루, 브룸입니다.

상자에서 꺼낸 포도는 조금 흐리다. 검붉은 알이 안개를 두른 것처럼 뿌옇고,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그 자리만 반질반질 윤이 난다. 씻으면 사라진다. 사라지고 나면 포도는 더 예뻐지고, 조금 덜 오래 간다.

농약이 아니라 밀랍이다

그 가루의 이름이 브룸(bloom)이다. 우리말로는 과분(果粉), 열매 가루다. 농약 잔여물이라 오해받기 좋은 생김새지만, 정체는 열매가 스스로 만든 밀랍이다. 포도, 자두, 블루베리, 사과 껍질 표면에 아주 얇게 덮인 왁스층으로, 열매가 자라는 동안 껍질 세포가 밀어낸 것이다. 만지면 지워지는 이유는 그것이 껍질 위에 얹힌 층이지 껍질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는 일은 두 가지인데, 둘 다 물을 막는 일이다. 안에서 밖으로 빠져나가는 수분을 막아 알이 마르지 않게 하고, 밖에서 안으로 드는 빗물을 튕겨 곰팡이가 앉을 자리를 줄인다. 잎의 큐티클과 같은 원리다. 브룸이 온전한 포도가 오래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가루 위에 사는 것들

브룸은 비어 있지 않다. 그 밀랍 위에 효모가 산다. 포도가 저절로 술이 되는 것은 이 효모 때문이다. 으깬 포도를 그냥 두면 껍질에 살던 효모가 즙의 당을 먹고 알코올을 만든다. 사백 년 전 『동의보감』이 “즙을 내어 술을 빚는다”고 한 줄로 적을 수 있었던 것도, 누룩 없이 되는 발효를 사람들이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와인 양조에서 배양 효모 대신 껍질의 효모만으로 발효시키는 방식을 따로 부르는 이름이 있을 만큼, 이 가루는 맛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가루를 읽는 법

브룸은 그래서 표지다. 가루가 고르게 남아 있으면 따고 나서 손을 덜 탄 포도다. 알마다 반질거리면 여러 번 만져졌거나, 씻긴 것이다. 선별장에서 포도를 송이째 집지 않고 꼭지를 잡는 이유, 상자에 넣을 때 알을 문지르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가루를 지키는 것이 포도를 지키는 것이다.

부엌의 순서는 포도 씻는 법에 적어 두었으니 한 줄만. 씻지 않고 넣고, 먹기 직전에 씻는다. 뿌연 포도가 오래가고, 반짝이는 포도가 먼저 간다.

제일 예쁜 상태와 제일 오래가는 상태가 다르다. 포도는 그 둘을 껍질 위 가루 하나로 갈라놓았다.

낱말 풀이

  • 브룸(bloom) — 포도·자두·블루베리 껍질의 흰 밀랍층. 열매가 스스로 만든다.
  • 과분(果粉) — 브룸의 우리말·한자 이름. 열매 가루.
  • 큐티클 — 식물 표면을 덮는 밀랍성 보호층. 수분 증발과 빗물 침투를 막는다.
  • 야생 효모 — 브룸 위에 사는 효모. 포도가 저절로 술이 되는 까닭.

참고: 과분의 구조와 기능은 일반 원예·식품과학 문헌을 따랐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식품 정보입니다.

더 읽기: 북쪽 과일 가운데 가장 귀한 것 — 『동의보감』의 포도

2026.09.12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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