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톡의 편지

끝물 포도 상자는 왜 송이가 성글까 — 올해 마지막 포도를 싸는 농장의 저녁

끝물 포도 — 농장 작업대의 마지막 송이와 신문지에 싼 상자

추석이 지나 거래처 포도 농장에 들렀습니다. 작업장에는 올해 마지막 상자들이 쌓여 있었고, 어른은 끝물이 제일 달다고 하셨습니다. 끝물이라는 말을 오래 생각한 편지.

추석 지나 거래처 포도 농장에 들렀습니다.

여름에 왔을 때는 작업장 입구까지 콘티 상자가 쌓여 있어 트럭을 길에 세워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마당 안까지 들어갔습니다. 상자는 작업대 위에 몇 줄뿐이었고, 선별기도 꺼져 있었습니다.

사장님은 송이를 하나씩 들어 가위로 상한 알을 떼고 계셨습니다. 여름이면 선별기가 하던 일을, 끝물에는 손이 합니다.

끝물 포도는 한눈에 알아봅니다.

알이 작고, 송이가 성글고, 가지가 조금 갈색으로 마릅니다. 상자 안에서 송이끼리 부딪히지 않도록 신문지를 한 겹 더 넣습니다. 사장님은 그 한 겹을 넣으며 “이게 올해 마지막”이라고 하셨습니다. 묻지 않았는데 먼저 하신 말이었습니다.

사전은 끝물을 “과일, 푸성귀, 해산물 따위에서 그해의 맨 나중에 나는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같은 말로 막물을 적어 두었습니다. 처음도 한창도 아니고, 맨 나중. 말 자체가 한 해의 끝에 오는 것들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농장 어른들은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끝물이 제일 달다고.

밭에 오래 매달려서 그렇다고도 하고, 밤이 차가워져서 그렇다고도 하십니다. 저는 그 말을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다만 작업대에서 떼어 주신 한 알을 입에 넣으니, 여름 포도에는 없던 뒷맛이 조금 오래 남는 것은 압니다.

“끝물이 제일 달다.”
그 말은 포도 이야기이기도 하고, 포도 이야기만은 아니기도 합니다.

어머니는 끝물 과일을 좋아하셨습니다.

시장에서도 늘 첫물보다 끝물을 사 오셨습니다. 값이 헐해서라고만 생각했는데, 작업대 앞에 서 있다 보니 다른 이유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끝물은 오래 두고 먹을 수 없는 과일입니다. 사 온 날 저녁에 다 먹어야 합니다. 식구가 한자리에 앉아야 비워지는 양이었습니다.

올여름 어머니를 보내 드리고, 처음 맞는 가을입니다.

신문지를 한 겹 더 넣는 사장님의 손을 보다가, 잠깐 다른 손이 겹쳐 보였습니다.

돌아오는 길, 트럭 조수석에 상자 하나가 실려 있었습니다.

“팔 건 아니고, 가져가서 드시라”고 주신 끝물 포도였습니다. 집에 와서 그날 저녁에 다 먹었습니다. 끝물은 그렇게 먹는 과일입니다.

밭에는 아직 잎이 남아 있고, 작업장에는 빈 상자가 쌓여 있고, 달력에는 곧 한로가 옵니다.

끝물은 끝이 아니라, 그해의 맨 나중이라는 이름입니다.

나중이라는 말이 올해는 조금 길었으면 합니다.

— 쿡톡의 편지, 올해 마지막 포도를 싸는 농장에서 돌아온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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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3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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