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향기가 아니라 — 밤마다 나는 같은 문장을 다시 쓴다

허수경의 글로벌 블루스. 음식의 향기는 가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끝내 누군가를 먹이려 했던 사람들의 시간에서 온다.

밤이 깊어지면 나는 자주 같은 문장을 다시 고쳐 쓴다.

누군가는 음식을 이야기하며 “가난의 향기”라는 말을 쓴다. 처음에는 그 표현이 왠지 문학적으로 들렸다. 조금 쓸쓸하고, 조금 아름답고, 오래된 식탁의 정서를 품고 있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문장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농부에게서 상자를 받아 다시 누군가의 부엌으로 보내는 일을 시작한 뒤부터였다. 그 말은 때때로 식탁 위에 닿기까지의 노동을 너무 가볍게 만들었다.

· · ·

허수경은 오래전 “완벽한 글로벌의 블루스를 준비한다”라고 적었다.

울릉도의 취나물, 북해의 조갯살, 태국의 피쉬소스, 알프스의 소금. 한 그릇의 나물무침을 위해 세계의 지도가 부엌 위에서 접혔다 펴지는 장면.

그 시를 읽으며 나는 오래 생각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향의 맛’조차 사실은 오래된 결핍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었다는 것을.

생선을 오래 먹기 위해 식초에 절이고 밥에 감아 두었던 것이 스시가 되었고, 앙투안 파르망티에는 굶주리던 사람들을 위해 감자를 퍼뜨리려 애썼다. 김치 역시 긴 겨울을 견디기 위한 저장의 방식이었다.

음식은 언제나 부족함과 가까운 자리에서 시작되곤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핍 자체가 향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 결핍을 넘어가려 했던 사람들의 손을 떠올린다.

겨울을 버티기 위해 소금을 아끼며 장을 담그던 손. 봄을 기다리며 언 땅을 헤집어 나물을 캐던 손. 멀리 있는 가족에게 보내려고 밤늦게까지 상자를 포장하던 손.

음식의 향기는 가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끝내 누군가를 먹이려 했던 사람들의 시간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농부가 보내온 상자를 열 때마다 나는 잠시 멈춘다.

달래 한 단을 보며 겨울 흙을 밀어 올린 뿌리를 생각하고, 두릅 한 가지를 보며 산이 가장 먼저 내민 손 같은 모양을 떠올린다. 봄동 한 포기에도 얼어붙은 땅을 견뎌 낸 시간이 남아 있다.

재료 하나하나에는 누군가 지나온 계절이 묻어 있다. 그리고 그 계절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도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나는 ‘고향의 맛’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으려 한다.

고향은 멈춰 있는 그림이 아니다. 누군가 손질하고, 누군가 기록하고, 누군가 다시 건네는 흐름에 가깝다.

시인이 먼 나라의 피쉬소스를 부엌에 들이듯, 어머니가 외할머니에게 배운 간을 오늘 저녁 식탁에 다시 올리듯. 고향은 늘 사람에서 사람으로 건너간다.


허수경은 시의 마지막에서 “완벽한 고향을 건설한다”라고 적었다.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붙들고 있었다.

완벽한 고향은 어쩌면 짓는 것이 아니라, 매일 다시 건네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손을 거쳐 누군가의 식탁으로 옮겨 가는 동안, 고향은 조금씩 살아남는다.

나는 여전히 밤마다 부엌을 떠올린다.

부엌은 낭만이 아니다. 하루의 노동이 마지막으로 내려앉는 자리이고, 계절이 사람에게 건네는 가장 조용한 답례다.

오늘 밤 당신 식탁 위에 놓인 한 접시도, 사실은 아주 먼 시간과 손끝을 지나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잠시만 말없이 들여다보면, 한 접시 위에서 세계가 조용히 정돈되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가난의 향기가 아니다. 견뎌 낸 사람들의 숨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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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0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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