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빛을 먹은 사과 — 한 알의 붉음에 남은 시간

어머니가 품팔이로 받아 오시던 사과 상자, 아카시아 울타리 너머 친구집 과수원, 예산 농부의 한마디. 사과 한 알의 붉음은 누군가의 시간이 남긴 기록이다.

사과는 너무 익숙한 과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도록 사과를 그냥 사과로만 먹는다. 어느 산에서 왔는지, 어떤 바람을 지나 붉어졌는지, 누가 그 나무 앞에 오래 서 있었는지를 잘 묻지 않는다.

나 역시 그랬다.

· · ·

어릴 적 우리 집 거실 한쪽에는 가을마다 사과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뚜껑은 늘 열려 있었다. 누가 지나가다 하나씩 집어 먹으라는 뜻이었다.

그 사과들은 대개 어머니가 마을 과수원에 품팔이 다녀오시고 받아 오신 것들이었다. 사과를 따고, 봉지를 씌우고, 낙과를 주워 담고 돌아오시던 날이면, 저녁 무렵 트럭 짐칸에서 사과 상자 하나가 따라 내려왔다.

상자에는 흙냄새와 햇빛 냄새가 함께 묻어 있었다.

나는 한동안 세상 모든 집 거실에 가을이면 사과 상자가 놓이는 줄 알았다.

그만큼 사과 과수원은 한국 사람들의 오래된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었다. 가을 오후의 비탈밭과, 낮게 드리운 햇살과, 빨갛게 익은 사과 사이를 천천히 걷는 사람의 뒷모습.

과수원이라는 말에는 이상하게도, 풍요와 쓸쓸함이 함께 들어 있다.

어머니가 사과를 깎으실 때면 칼은 늘 한 방향으로만 움직였다. 사과를 손바닥 안에 가만히 쥔 채 손목만 천천히 돌리면, 껍질이 길게 이어져 내려왔다.

사과를 깎는 칼등에 사과 즙이 조금씩 맺히고, 반으로 갈라진 단면은 희고 환하게 빛났다. 어머니는 늘 내 앞에 반쪽을 놓아 주셨다. 그때 닿던 손끝은 늘 조금 차가웠다.


어릴 적 친구집 과수원에도, 울타리는 아카시아나무로 둘러쳐져 있었다.

초여름이면 하얀 아카시아꽃 향이 길까지 흘러나왔다. 그 냄새를 맡으면 이상하게도 과수원 안 공기까지 달게 느껴졌다.

어느 가을날, 친구들과 몰래 그 과수원에 들어간 적이 있다. 잘 익은 사과 몇 알을 따 보겠다고 아카시아 울타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가, 친구 아버지에게 들켜 버렸다. 혼이 나서 사과도 몇 알 못 챙기고 달아났다.

다음 날, 어른들끼리 이야기가 잘 닿았는지 그 일은 그대로 무마되었다. 우리는 금세 그 일을 잊었고, 사과 서리는 가을 한철의 놀이처럼 다시 이어졌다. 그런 시절이었다.

지금 떠오르는 건, 혼났던 기억을 덮어 버리는 울타리 주변의 달큰한 아카시아 향이다. 그리고 그 향 위로, 어린 시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아카시아 껌 광고 멜로디가 슬쩍 겹쳐 온다.

가을 사과와 아카시아 향은 내 기억 속에서 아직도 한 계절처럼 붙어 있다.


품종 이름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다.

후지, 홍로, 엔비, 감홍. 사과는 생각보다 많은 이름으로 나뉘어 있었다. 어떤 것은 단단했고, 어떤 것은 향이 깊었고, 어떤 것은 오래 두어도 잘 물러지지 않았다.

엔비는 껍질을 벗겨도 갈변이 늦어 도시락용으로 많이 찾는다고 했다. 어머니 상자 안에도 언젠가부터 그런 사과가 섞여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과의 이름이 많아졌다는 것은, 그 과일이 시대를 따라 여러 번 다시 만들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예산의 한 과수원에 간 적이 있다. 새벽 안개가 나무 사이를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같은 가지에 달린 사과인데도, 햇빛이 먼저 닿은 쪽과 그늘에 오래 있던 쪽의 붉음이 달랐다. 농부는 그 차이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같은 나무도 다 달라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한 알의 붉음이 단순한 색이 아니라는 걸 처음 실감했다.

사과의 붉음은 낮의 볕과 밤의 서늘함, 비의 양과 바람의 방향이 오래 남긴 기록 같은 것이었다.

사과는 나무 하나하나가 다르다고 그 농부는 말했다. 같은 과수원 안에서도 햇빛이 드는 각도가 다르고, 바람이 지나가는 길이 다르다고.

위쪽 열매는 햇빛을 더 먹고, 아래쪽 열매는 흙의 기운을 더 가까이 받는다. 한 그루 안에서도 열매마다 자기 자리가 있었다.

그리고 농부는 그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 한 해 동안 같은 나무 앞에 여러 번 선다. 사과의 이름 뒤에는 그런 사람의 시간이 붙어 있다.


지금도 사과를 한입 베어 물 때면 나는 아주 잠깐 멈춘다.

이 단맛은 어떤 가을의 것일까. 이 단단함은 누가 오래 지켜본 나무에서 왔을까.

익숙하다는 이유로 우리가 너무 쉽게 지나쳐 온 과일 하나.

사과를 천천히 먹는다는 것은, 그 붉음 뒤에 서 있던 사람을 한 번 더 떠올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 저녁의 사과는 조금 오래 손안에 굴려 본다.

그러면 아주 희미하게라도, 아카시아꽃 향이 섞여 있던 어릴 적 과수원의 바람이 다시 돌아올 것 같아서.

음식, 그 너머의 이야기를 편지로

스팸 없이, 매주 금요일 편지 한 통만 보냅니다.

2025.10.12 — cooktalk

댓글

댓글 남기기

cooktalk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