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끓는 국밥을 한 술 떠먹고, 어른들은 “어, 시원하다” 한다.
뜨거운데 시원하다니 — 처음 듣는 사람에겐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외국어로 옮기기 가장 까다로운 우리말 가운데 하나가 이 ‘시원하다’다. 찬 음료에도 시원하다 하고, 끓는 해장국에도 시원하다 한다. 성격을 두고도, 막혔던 일이 풀렸을 때도 시원하다 한다. 한 낱말이 차가움과 뜨거움, 맛과 마음을 넘나든다. 놀라운 것은, 이 넓은 폭이 사전에 이미 그대로 적혀 있다는 사실이다.
뿌리는 ‘차가움’이 아니라 ‘훤함’
‘시원하다’의 옛말은 ‘싀훤ᄒᆞ다’다. 우리말샘의 역사 정보는 그 길을 ‘싀훤ᄒᆞ다(15세기~19세기) > 싀원ᄒᆞ다(19세기) > 시원하다(20세기~현재)’로 적어 둔다. 가장 이른 자취는 1447년 『석보상절』이다. 한자 창(暢)을 ‘싀훤ᄒᆞ다’로 옮겼는데, 막힌 것이 통하고 펴진다는 글자다. 1880년 『한불자전』은 이 말을 상쾌(爽快)로 받았다. 창이든 상쾌든, 차다는 뜻이 아니다.
이 ‘싀훤ᄒᆞ다’가 ‘훤하다’와 한 뿌리라는 풀이가 있다. 국어학자 송지혜는 두 말이 ‘막힘없다’는 뜻을 함께 지니며, ‘훤하다’는 공간 쪽으로, ‘싀훤ᄒᆞ다’는 마음 쪽으로 뜻을 넓혀 갔다고 보았다(「‘훤하다’와 ‘시원하다’의 의미 상관성에 관한 통시적 연구」, 우리말글 54, 2012). 다만 사전은 ‘시원하다’의 어원을 따로 밝혀 두지 않았다. 그러니 이는 단정이 아니라, 연구가 내놓은 풀이로 읽는 편이 맞다.
그렇더라도 옛 문헌이 가리키는 방향은 한결같다. 시원함의 자리는 차가움이 아니라 막혀 있던 것이 트여 후련한 상태 쪽이다. 차가운 바람이 시원한 것도, 결국 답답함이 가시고 트이기 때문이다. 차가움은 시원함의 한 경우일 뿐, 전부가 아니었다.
그래서 뜨거운 국물도 시원하다
이 쓰임은 입에서만 도는 말이 아니라 사전에 정식으로 올라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시원하다’의 둘째 뜻을 이렇게 적는다 — ‘음식이 차고 산뜻하거나, 뜨거우면서 속을 후련하게 하는 점이 있다.’ 차가움과 뜨거움을 한 뜻풀이 안에 나란히 놓은 것이다. 뜻밖의 용법이 아니라, 이미 이 낱말의 정식 얼굴이다.
뜻풀이가 가리키는 것도 결국 ‘후련함’이다. 뜨끈한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 뭉친 속을 풀고, 더부룩하던 위가 트이는 그 느낌 — 그것이 바로 시원함이다. 차서 시원한 게 아니라, 속이 풀려 시원한 것이다. 콩나물국으로 숙취를 다스리고, 얼큰한 탕으로 땀을 빼고 나면 가슴까지 후련해지는 그 개운함을, 우리는 한 단어로 ‘시원하다’라 불러 왔다. 온도가 아니라 후련함이 기준인 셈이다.
마음에서도, 시원하다
그 후련함은 마음으로도 건너간다. 이 또한 사전이 따로 뜻을 나누어 적어 둔 자리다 — ‘막힌 데가 없이 활짝 트이어 마음이 후련하다’, ‘말이나 행동이 활발하고 서글서글하다’, ‘답답한 마음이 풀리어 흐뭇하고 가뿐하다’. 그래서 우물쭈물하지 않고 답하면 ‘대답이 시원하다’ 하고, 막힘없이 일을 처리하면 ‘시원하게 끝냈다’ 한다. 가린 것 없이 트인 사람을 두고 ‘성격이 시원하다’ 한다.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막혔던 것이 풀리는 자리마다 이 말이 놓인다. 혀에서 느끼는 후련함과 마음에서 느끼는 후련함이, 같은 한 단어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뜨거운 국물에 시원하다 하는 건 모순이 아니다. 차가워서가 아니라, 트여서 — 속도 마음도 후련해지는 그 순간을, 우리는 오래 ‘시원하다’라 불러 왔다.
시원함은 온도가 아니라, 막힌 것이 트이는 일이다. 그래서 뜨거운 국물도, 트인 마음도 시원하다.
말맛 사전은 먹는 일에서 온 우리말의 결을 따라가며, 음식 너머의 이야기를 읽습니다. 함께 읽기 → 간 · 감칠맛
참고: 표준국어대사전, 우리말샘(국립국어원)의 역사 정보. 송지혜, 「‘훤하다’와 ‘시원하다’의 의미 상관성에 관한 통시적 연구」(우리말글 54, 2012). 어원 정보가 없는 낱말은 단정하지 않고 풀이로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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