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리 마당의 둥시나무. 아버지가 장대를 돌리고 식구가 감을 받아 내던 늦가을. 아랫목의 삭힌감, 처마 밑의 곶감 — 두 번의 기다림이 모은 겨울의 단맛.
나는 상주에서 자랐다.
낙동강이 크게 휘어 도는 분지. 낮에는 볕이 오래 들고, 밤이면 바람이 얇은 칼처럼 식어 들어오던 땅. 가을이 깊어질 무렵이면 공기에서 먼저 감 냄새가 났다. 그리고 그 뒤로 서리가 내렸다.
모동면 정양리. 내가 자란 집 마당 한쪽에는 오래된 둥시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둥시는 상주에서 오래 키워 온 감이다. 씨가 적고, 살이 단단하고, 말릴수록 단맛이 깊어진다. 지금 우리가 아는 상주 곶감도 대부분 이 둥시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그저 “우리 집 감나무”였고, “어머니가 저 감으로 또 무언가를 만드신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 · ·
첫 서리가 지나가고 나면 아버지는 마당 한쪽에 세워 두었던 장대를 꺼내셨다. 장대 끝에는 T자 모양의 나뭇가지가 달려 있었다.
감 꼭지를 걸어 비틀면 작은 가지 한 마디를 단 채 감이 떨어졌다. 그 한 마디가 중요했다. 그래야 나중에 줄에 매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감을 딸 때는 절대로 땅에 떨어뜨리면 안 됐다. 멍이 든 감은 그 자리부터 물러졌다. 그래서 감 따는 날이면 늘 온 식구가 마당으로 나왔다.
아버지가 장대를 돌리면, 어머니와 나, 어린 여동생들이 나무 아래 서서 감을 받아 냈다. 장갑 안쪽 손끝이 늘 차가웠다.
감을 그냥 두면 홍시가 된다. 붉고 무르게 익은 홍시는 손에 쥐는 것만으로도 터질 듯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금세 물러졌다.
상주의 늦가을은 마당에 홍시가 툭툭 떨어지는 계절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오래 보며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 과일은 그대로 두면 금세 사라진다는 것을.
그래서 감을 깎고, 삭히고, 매달았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던 시절, 상주 사람들에게 감은 겨울까지 데리고 가야 하는 식량이었다.
결핍이 지혜를 만든 것인지, 감이 먼저 사람에게 방법을 알려 준 것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덜 익은 감의 떫은맛은 사람 손을 거쳐야 비로소 풀린다. 상주 사람들은 곶감으로 만들지 않는 감을 물에 담가 삭혀 먹었다.
미지근한 물 속에 하루 이틀 담가 두면 떫음은 빠지고, 살은 여전히 단단한 채 단맛만 남았다. 우리는 그것을 그냥 삭힌감이라고 불렀다.
어머니도 겨울이면 감을 장독 안에 담아 이불로 덮어 아랫목에 밀어 넣곤 하셨다. 며칠 뒤 꺼낸 감은 떫은맛이 모두 빠지고, 온기 어린 단맛만 남아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 아랫목 냄새를 기억한다. 따뜻한 방바닥과, 이불 속에 오래 묻혀 있던 감의 냄새. 그 감각은 다른 어떤 과일에서도 만나 본 적이 없다.
본가가 시내로 이사 나온 뒤에도 어머니는 감을 놓지 못하셨다. 한 해는 삭힌감을 광주리에 담아 상주역 앞에 나가 앉으셨다. 신문지를 깔고, 기차 시간에 맞춰 한두 시간씩.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감 한 알을 건네던 풍경.
대단한 장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광주리 안에는 정양리의 가을과, 아랫목의 온기와, 어머니 손의 시간이 함께 들어 있었다.
가을이 깊어지면 어머니는 곶감 농장으로 품을 나가셨다. 농장 한쪽에는 감박피기가 놓여 있었다.
감을 고정하고 손잡이를 돌리면, 작은 칼날이 껍질을 길게 벗겨 냈다. 낮고 규칙적인 소리. 껍질은 긴 리본처럼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그 껍질도 버리지 않으셨다. 한 봉지씩 얻어 와 햇빛에 말려 겨울 간식으로 두셨다. 우리는 그걸 그냥 감껍데기라고 불렀다. 설탕 한 톨 없어도 씹을수록 단맛이 깊어졌다.
감은 끝내 버려지는 부분이 없는 과일이었다.
껍질 벗긴 감들은 짚줄이나 노끈에 매달려 처마 밑에 걸렸다. 내 기억 속의 정양리는 늘 그 풍경으로 남아 있다.
집집마다 처마 끝에 주홍빛 감들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어느 집은 짚줄을 썼고, 어느 집은 노끈을 썼고, 어느 집은 대나무 시렁을 엮어 걸었다. 조금씩 방식은 달랐지만, 그 차이 안에는 늘 그 집 사람 손버릇이 남아 있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감들이 아주 조금씩 흔들렸다. 나는 아직도 그 장면을 상주의 늦가을이라고 부른다.
곶감에는 두 개의 시간이 있다. 오래 말려 단단해진 건시와, 조금 일찍 멈춰 속이 촉촉한 반건시. 같은 감인데도 어디에서 멈췄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이 된다.
건시는 차분했고, 반건시는 다정했다. 같은 열매가 다른 시간을 지나온 것뿐이었다.
건조가 깊어지면 감 표면에 하얀 분이 피어난다. 시상(柿霜)이라고 불리는 그것은, 감 안의 당분이 천천히 밖으로 올라온 결과다.
어머니는 시상이 잘 오른 곶감을 보면 “분이 곱게 앉았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하실 때의 얼굴은 자식을 바라보는 얼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요즘은 건조 시설도 달라졌다. 망사와 차광막을 두른 건조장 안에서 선풍기를 돌려가며 곶감을 말린다. 더 균일하고, 더 빠르고, 곰팡이 위험도 적다.
그래도 오래된 농가들은 아직 처마 밑 바람을 믿는다. 현대식은 늘 비슷하지만, 처마 밑 곶감은 해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다. 다르다는 것은, 그 감이 어떤 겨울을 지나왔는지 기록하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수확 방식도 달라졌다. 가지 한 마디를 남기려 장대를 정성껏 돌리던 시절은 지났고, 이제는 나무를 흔들어 감을 떨어뜨린다. 매달 때 쓰는 작은 플라스틱 고리도 시중에서 대량으로 생산된다. 같은 결과를 더 빠르게 만드는 방법이 자리 잡았다.
12월이 되면 상주 곳곳에서 곶감 축제가 열렸다. 처마 밑에서 막 내린 반건시를 손에 받으면 신기하게도 차갑지 않았다.
그때 처음 알았다. 곶감은 말라 가면서도 끝내 사람 체온 가까운 온도를 품고 있다는 것을.
감과 곶감 사이에는 사실 두 번의 기다림이 있다.
하나는 감이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 다른 하나는 그 감이 천천히 다른 것이 되기를 견디는 시간.
삭힌감은 짧은 기다림이고, 곶감은 긴 기다림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그 두 가지를 모두 하셨다. 역 앞 광주리에는 짧은 기다림을 담고, 처마 끝에는 긴 기다림을 걸어 두셨다.
지금은 사계절 내내 냉장고에서 곶감을 꺼내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내 몸 어딘가에는 여전히 정양리의 첫 서리와, 상주역 앞 새벽 입김이 남아 있다.
곶감 한 알을 입에 넣을 때마다 그 계절이 다시 돌아온다. 단맛이 천천히 풀리는 동안, 나는 내가 어디에서 자랐는지를 잠깐 다시 확인한다.
말라야 단단해지고, 기다려야 단맛이 오는 것.
상주 사람들은 아마 감 한 알을 매달며, 먼저 겨울을 견디는 법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2025.11.15 — coo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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